2025년 1월 3일 금 [백]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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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5-01-03 조회수20 |
복음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2025. 1. 3 ; 답십리 본당)
“하느님의 어린양”이란 표현은 구약 시대부터 더듬어 보아야 할, 꽤나 무겁고 중요한 표현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를 떠나기 전날(탈출 12장), 어린양의 피로 하느님께 ‘생명’을 보증받았다. 피가 생명일 수 있는 것은 어린양의 희생 덕분이었고, 그 희생은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향하는 여정의 어려움에 버팀목이 되었다. 어린양의 희생은 이사야서 53장에서도 나타난다. 고난받는 주님의 종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 종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에 빗대어 묘사한다. 죽어 가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 침묵은, 다른 이의 죄를 대신 짊어진 주님의 종의 희생을 상징하는 격조 있는 표현이다. 요한은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통하여 어린양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긴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다가오시자 큰 목소리로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라고 외쳤다. 이 문장에서 특별한 단어 하나를 만나게 된다. 고대 그리스어로 ‘코스모스’(κόσμος)는‘세상’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질서’라는 의미도 지닌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 ‘코스모스’는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인간의 극단적 자기 중심주의,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의 그릇된 질서이다. 위의 세상이 아니라 아래 세상의 질서이다. 그 세상은 인간의 그릇된 이기심이 지배하는 세상의 질서이다. 결국 극복되어야 할 세상의 질서이다. 그런 탓에 “세상의 죄”는 결국 우리 인간의 이기심이며 자만심이다. 세상의 죄는 인간 각자의 개인적인 죄를 넘어서는 죄이다.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고 그분을 적대시하는 세상의 죄인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인류, 상처 입은 인간 세상을 치유하고 구원하기 위해 하느님의 어린양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어린양은 세상의 죄를 없애신다는데, ‘없애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αἴρω)는 ‘치워 버리다’라는 일차적인 의미를 지니기도 하지만, 보다 깊은 뜻은 ‘짊어지다’이다. 어린 양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결국 우리 인간 각자의 죄, 세상의 죄, 집단적이며 구조적인 죄를 당신 어깨 위에 짊어지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어린 양”이라 외치며, 머지않아 우리들의 모든 죄를 자신이 짊어진 후, 묵묵히 수난과 십자가 죽음의 길을 걸어갈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암시하고 예언한 것이다. 자신의 죽음으로 타인을 살리는 어린양의 겸손과 희생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이자, 예수님의 삶 자체였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이러한 희생을 사랑이라고 표현한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낮은 자리에 먼저 찾아드는, 그래서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 그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사랑이다. 더불어 살기에는 너무 심한 경쟁에 내몰린 오늘, 우리의 세상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유일한 일은 사랑임이 틀림없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어린양으로 우리에게 오신다.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은 이 세상으로 묵묵히 걸어오시는 예수님의 발걸음을 따라 걷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세상으로 걸어오시는데, 우리는 그저 하늘만 쳐다보며 시간을 허비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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