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6일 목 [백] 연중 제1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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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5-01-16 조회수9 |
복음 <그는 나병이 가시고 깨끗하게 되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0-45 그때에 40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41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42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43 예수님께서는 그를 곧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 44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45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연중 제1주간 목요일 (2025. 1. 16 ; 답십리 본당)
오늘 독서의 바로 앞에서는 진리 자체이고 대사제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는 권고와 함께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였던 모세와 견주어 설명하였다. 이어지는 오늘 독서에서는 모세가 활동하던 시기, 즉 이집트에서의 탈출 이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인 불신앙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이때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입니다.”는, 인용된 시편 95장 8~11절이 성령의 영감(靈感, Inspiration)을 받아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임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사실 성령께서는 하느님께서 명하신 것들을 구약 시대 예언자들의 영과 가슴에 말씀하시는 역할을 하였다. 또 성령은 그것들을 모아서 인간 저자를 통해 빠짐없이 기록으로 남기셨다. 말하자면, 인간이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느님의 뜻을 인간 언어로 기록하게 하는 편집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하신 셈이다. 특히 “말씀하시는”이란 단어는 직설법 현재 시제로 ‘지금 말하고 있다’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성령께서 말씀하셔서 기록된 성경 말씀이 시대를 초월하여 항상, 현재도 그 말씀을 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 너희가 그분의 목소리를 듣거든”에서 “오늘”은 ‘어떤 특별한 날’, 즉 구원의 때를 나타낸다. 단, 이 표현이 구약 상황에서 신약 상황으로 옮겨져 사용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대사제라고 한 고백을 확고하게 다지고자 하는 사람들의 시대에 적용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오늘’이라는 시간에 우리와 만나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우리 가운데서 역사(役事)하신다. 그래서 오늘날 예수님의 음성은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 마음과 영혼에 울려 퍼진다는 것이다.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처럼, 반항하던 때처럼.”은 출애급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던 도중 르피딤에 진을 쳤을 때 있었던 사건과 관련된 진술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마실 물을 구하지 못하자 모세와 다투고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왔소? 우리와 우리 자식들과 가축들을 목말라 죽게 하려고 그랬소?”라면서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라고 의심하기까지 했었다(탈출 17, 1-7). 그런데 르피딤에서 있었던 이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육체적으로 치고받으며 싸웠다는 것이 아니라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격렬하게 따졌다는 의미이다. 그들이 취한 이 행동은 하느님을 향한 격분, 하느님께 대한 반역과 반항으로 규정한다.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믿음과 순종인데, 그들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자기들을 구원하신 그분을 분노케 했던 것이다. 그분은 그들의 이러한 태도를 모반(謀反, rebellion)으로 받아들였다. 자신의 명령을 수행하는 모세를 방해하려고 한 일체의 행위들을 하느님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과 반역으로 받아들이신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께 대한 불순종 역시 그렇게 받아들이신다. 즉 그리스도를 버리고 과거 유다교로 돌아가는 행위가 하느님께 대한 반역임을, 당시 유다 출신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고하기 위하여 이 과거의 사건을 인용하는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이 르피딤에서 취한 행위는 하느님께 대한 시험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하느님이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구해주시고 홍해를 건너가게 하신 전능하신 분임을 체험했으면서도, 일시적으로 당하는 어려움 때문에 그분을 신뢰하지 못하고 시험하려 했다. 그것은 구원자 하느님께 대한 모독과 다름이 없었다. 탈출기는 “그들이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하면서 주님을 시험하였다 해서, 그곳의 이름을 마싸와 므리바라 하였다.”(탈출 17, 7)라고 전하는데, “마싸와 므리바”라는 두 지명은 인간이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저버리면, 하느님의 축복을 상실하고, 마음이 완고해져서 멸망하고 구원받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실증한 역사를 보여준다. 그래서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고,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스어에서 “마음”을 의미하는 단어는 생명의 중심을 지칭하며 인간의 지적, 영적인 중심 자리를 지칭한다. 그러니 더더욱 늘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며, 자주 반성해야 한다. 그래야 하느님 나라를 향해 순례하는 우리들이 옛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였던 불신의 마음을 경계하고 늘 그분의 목소리에 성실히 응답할 수 있다. 그렇게 하느님께 충실한 신앙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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