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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27일 목 [자] 사순 제3주간 목요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5-03-27 조회수31

복음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14-23

그때에 14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마귀가 나가자 말을 못하는 이가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군중이 놀라워하였다.

15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16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18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19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21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22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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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3주간 목요일

(2025. 3. 27 ; 답십리 본당)

 

   오늘 복음에는 벙어리 마귀를 쫓아낸 예수님의 기적에 대해 상반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 즉 기적에 대해 놀라워하는 군중과 이를 헐뜯으려는 이들이 등장한다. 헐뜯는 이들은 예수님이 마귀 우두머리 베엘베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라며 예수님을 비난하였다. 이 말은 당시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 설득력 있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 마귀를 쫓아내는 구마 행위는 주로 이교도들 사이에서 성행했었고, 그들의 행위는 유다인들 입장에서 베엘제불의 힘을 빌리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비난에 대해 일부 사람들이 크게 동조했던 것 같다. 그래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까지 요구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탄이 사탄을 내쫓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꾸짖으셨다. 사실 어떤 한 마귀가 자신과 동일한 목표를 갖고 있는 다른 마귀를 쫓아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보아도 맞지 않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서슴없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뭐라고 해야 할지, 안타깝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하다하다 안 되니 이젠 미쳤구나 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모습들에 대해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이런 말을 하였다. 사람들은 자주 완고함과 이기심에 사로잡혀 이성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어쨌거나 그들을 용서하십시오. 여러분이 친절히 대하면 그들은 의심에 사로잡혀 불순한 동기를 캐물을지 모릅니다. 어쨌거나 친절히 대하십시오. 여러분이 성공을 거두면 거기에는 반드시 불신하는 동료나 적대자들이 따릅니다. 어쨌거나 가야 할 길을 가십시오. 여러분이 진실하고 성실한 길을 걸을 때 사람들이 여러분을 속일지 모릅니다. 어쨌거나 진실하고 성실하십시오. 여러분이 몇 년 동안 공들여 뭔가를 세웠건만 사람들이 하룻밤 사이에 그것을 허물지 모릅니다. 어쨌거나 다시 세우십시오. 여러분이 평안함과 행복을 발견하면 누군가가 질투할지 모릅니다. 어쨌거나 기뻐하십시오. 오늘 행한 선은 이내 잊히고 말 것입니다. 어쨌거나 선을 행하십시오. 여러분이 가진 최선의 것을 내어주어도 별 소용이 없을지 모릅니다. 어쨌거나 최선의 것을 내어주십시오. 결국은 여러분과 하느님 사이의 문제이지 여러분과 사람들 사이의 문제가 아닌 까닭입니다.”

 

   악과 정반대편에 계신 예수님을 악의 자리에 위치시키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보다는 미움을, 용서보다는 다툼을 계속하려고 한다면, 그래서 내 기준만을 내세워 이웃을 판단하고 단죄해 나간다면, 그 모든 모습이 바로 예수님을 악의 자리에 위치시키는 큰 잘못을 범하게 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비판하시는 사람들, 그래서 예수님과 그분을 믿고 따르려는 이들을 갈라놓으려는 모습이나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분열, 그리고 사람과 공동체, 사람과 하느님 간의 분열은 무엇보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듣지 않는다는 것은 목을 뻣뻣이 세우는 교만의 표현이다. 이러한 교만은 우리 안에서, 우리 사이에서 하느님의 자리를 사라지게 한다. 그렇기에 말씀에 대한 경청을 통해 하느님의 공간을 더욱 더 확장할 수 있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하느님, 하느님 나라를 열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신이나 타인을 위해 어떠한 일을 하든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는다면 무익한 것이 되고 만다. 그러니 이제는 하느님을 제자리에, 즉 하느님의 자리에 모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처럼 겸손하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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