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3일 목 [자] 사순 제4주간 목요일 | |
---|---|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5-04-03 조회수36 |
복음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8,1-11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2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3 그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4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5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6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7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8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9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11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사순 제4주간 목요일 (2025. 4. 3 ; 답십리 본당)
유다인들에게는 삶이 곧 신앙이기에 세상에서 가장 신심 깊은 민족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들은 계명에 충실하고 철저하게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분의 놀라운 기적들을 보았으면서도, 성경에 언급된 메시아에 대해 잘 알고, 정말 모든 유다인들이 다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더구나 유다인들은 정말 열심히 성경 공부를 했다. 뭐한 말로 눈만 떴다 하면 성경을 펼쳤고, 성경을 연구했고, 성경에 목숨을 걸었다. 그러다 보니 성경에 통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 안에 쌓아놓은 성경 지식 때문에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하느님의 뜻을 잘 알았으니, 그분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을 텐데, 자신들 안에 가득 채워져 있던 선민의식과 우월감이 이를 가로막았다. 오히려 성경의 내용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반복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한 노력이 부족했다. 그 결과 그들의 신앙은 율법지상주의에 빠졌다. 그리고 너무 지엽적인 부분에 몰두하다 보니 성경이 가르치는 핵심에 소홀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니 성경의 정신대로 살지도 못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자신들의 삶을 규정한 제도에 ‘안주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의 사고방식, 믿음 방식, 생활 습관에 비판을 가하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더구나 그분의 말과 행동은 자신들이 ‘바랐던 메시아’와 너무나 달랐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판단만이, 이어져 온 가르침만이 옳다고 믿다 보니, 그것만이 전부라는 독단(獨斷)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독단은 하느님의 뜻을 찾기보다는 자신이 하느님의 뜻을 만들고, 자신의 틀 안으로 하느님을 끌어들이는 잘못까지 저질렀다. 그런 상황에서 무엇이 옳은지 분명하게 알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사실 우리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매 순간 ‘진실’을 찾아내기는 어렵다. 오늘은 ‘사실’로 믿었던 것이 내일은 ‘아닌 것’으로 나타난다. 오늘 ‘거짓’으로 알았던 것이 내일은 ‘진실’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기에 소문만이나, 행동 몇 가지만으로 ‘사람을 단정한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데도 그런 어리석음을 자주 반복한다.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 역시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정체를 알려고 노력하기는커녕 부정적으로만 판단하였던 것이다. 더구나 오늘 복음에서 들려주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언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이러한 증언은 당신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그래서 진실 여부를 올바로 판단하지 못하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말씀하신 것이었다. 더구나 예수님에 대해서는 세례자 요한이 이미 증언하였는데, 이를 믿지 않았다. 그건 결국 믿음이 없기 때문이었고, 믿음을 가지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오늘날 우리들, 정말 많은 강론과 강의, 그리고 성경 공부와 피정 등을 통해 하느님과 구세주 예수님에 관하여 이러저러한 좋은 이야기들을 듣는다. 그럼에도 그분에 대해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있다는 하느님은 우리 이성과 지성으로 이해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많이 읽고 외우고 있다고 해도 하느님을 많이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사실 세상의 것을 좇는 사람은 그것이 가진 매력만큼을 품게 된다. 돈에 대한 꿈을 품은 사람은 돈이 갖는 매력을 보여주고, 권력이나 명예를 꿈꾸는 사람은 권력이나 명예가 주는 매력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을 찾는 사람은 하느님의 매력, 신비를 품게 된다. 그러니 우리 안에 하느님의 매력이고 신비인 사랑이 절대 사라지지 않도록 하자.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유다인들처럼 자기 판단과 생각만이 가득 차지 않도록 하자. 오히려 내가 품은 하느님의 매력이 눈에 보이도록, 그리하여 우리가 온전히 하느님의 사람이 되도록 하였으면 좋겠다. |
파일첨부 |
이전글 | 2025년 4월 4일 금 [자] 사순 제4주간 금요일 |
---|---|
다음글 | 2025년 4월 2일 수 [자] 사순 제4주간 수요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