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본당 소식
본당 소식 미사강론

미사강론

2025년 4월 14일 월 [자] 성주간 월요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5-04-15 조회수13

복음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1-11

1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다.

2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

3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4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였다.

5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6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7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8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9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많은 유다인들의 무리가 몰려왔다.

예수님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도 보려는 것이었다.

10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11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떨어져 나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성주간 월요일

(2025. 4. 14 ; 답십리 본당)


  오늘 복음은 이스라엘의 해방을 기념하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 ‘순명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베타니아에 있는 라자로와 마르타, 마리아의 집에서 열린 잔치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때 마리아는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 즉 부피는 모르겠지만 327g을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공식적인 지도자임을 상징하고, 일반적으로는 머리에 받는데 예수님께서는 머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발에 기름부음을 받으셨다. 이는 예수님의 통치가 아래에서 위로 향할 것임을 의미한다. 세상의 지도자들은 위로부터 아래로 내리누르는 권력을 추구하지만, 예수님은 섬김의 권위를 가지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상황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유다 이스카리옷은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지 않는가?”하며 향유의 값어치를 계산하였다. 현재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노동자의 시급 10,030x 8시간 = 80,240x 300(데나리온) = 24,072,000원이다. 향유를 붓는 행위가 지닌 의미보다는, 그것이 존경과 사랑, 믿음의 표현임을 생각하지 않고 세상의 금액, 가치만으로 계산한 것이다.

 

   만약 성당을 짓지 말고,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는 가건물 성당에서 살자!’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는가? 동의하는가?

누군가 성당에 돈을 내지 말고 가난한 사람을 주는 게 낫다.”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이웃사랑이 많은 사람으로 생각되는가? 그러나 이는 부모에게 드릴 것을 차라리 자녀들에게 주라는 말과 같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해주신 분께 아깝다면 이웃에게도 아까운 것이다. 이에 요한 복음사가는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라고 결론내린다.

짐짓 이웃사랑이 대단한 것처럼 보이려 했던 유다 이스카리옷은, 실상 돈 때문에 예수님을 팔아넘겼다. 우리는 이웃들을 생각한다고 하느님께 드리는 것을 아까워해서는 안 된다. 부모에게 대한 사랑이 없다면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 ‘부처 눈에는 부처가, 돼지의 눈에는 돼지가보이는 것처럼, 유다의 눈에는 그저 돈만 보였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가장 좋은 것을, 자신의 시간과 능력, 재물을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에 기꺼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죽었던 라자로를 살리심으로써 부활의 생명을 드러내셨다. 그러나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를 죽이기로 결의하였다.”고 한다.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떨어져 나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리는 일을 하시는 예수님 곁에서 죽음의 어둠이 싹트고 있다. 좋은 일을 하는 곳에 기쁨이 넘쳐나야 하는 데 배신자 유다의 모습도 있고, 수석 사제들의 모습도 있다.

   오늘도 여전히 생명의 문화와 더불어 죽음의 문화가 함께 있다. 시기와 질투, 미움, 분노, 적개심, 기득권을 누리려는 곳에 어둠의 그림자가 밀려온다. 그러나 사랑의 마음이 있는 곳에 모두를 주고도 더 주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나보다는 너를 위한 배려를 통해 예수님을 위로해 드리고 마리아처럼 존경과 사랑으로 모두를 바칠 수 있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파일첨부                        
이전글 2025년 4월 15일 화 [자] 성주간 화요일
다음글 2025년 4월 12일 토 [백] 성모 신심 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