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1월 12일 수 [홍]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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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5-11-12 조회수54 |
복음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7,11-19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2025. 11. 12 ; 답십리 본당) 1054년 가톨릭교회와 멀어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에 속한 동방 교회는 교황청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1594년 남동 러시아 및 폴란드의 7개 교구가 가톨릭교회와의 일치를 선언하였다. 이때 동방교회에 속한 바실리오 수도회의 신부들이 그 일치운동에 참여했는데, 성 요사팟은 그 선구자이다. 요사팟은 1580년경 우크라이나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뛰어난 상인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뜻에 따라 공부를 하였다. 그러나 장사보다는 영혼 문제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래서 부모의 유산까지 포기하고 24세 때인 1604년 바실리오회에 입회하였다. 5년 후인 1609년 사제 서품을 받았는데, 그의 설교는 곧 유명해졌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교회와 로마간의 일치에 지도력을 발휘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그의 영성과 지도력으로 젊은 나이에 몇몇 수도원의 원장을 역임했다. 그는 1617년에 비테프스트의 주교로 임명되었다가, 이듬해인 1618년에 폴로츠크의 대주교가 되었다. 대주교로서 그는 교회 일치를 위해 노력하였으며, 그의 노력은 성공을 거두어 리투아니아 내의 많은 동방 교회들이 가톨릭교회와 일치하며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였다. 이런 그의 성공에 대한 반대파의 증오도 커져갔다. 그들은 요사팟을 옭아맬 흠을 찾았으나 한 점의 틈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혼란스러운 교구를 바로잡기 위해 더 노력하였고, 기혼 사제, 느슨한 규칙, 페허화된 성당들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며 교회 개혁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에 그의 반대파는 그를 비방 모함해 명예를 손상시키려 하였다. 그들은 또 로마 교회는 리투아니아에 맞지 않는다면서 대립 주교를 내세웠다. 이리하여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1623년 비테프스트를 사목 방문하던 그를 미워하는 자들의 선동으로 이교도들이 흉기를 휘두르며 사제관으로 몰려 들어왔다.요사팟을 호위하던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대항했으나 일부는 살해되고 일부는 부상 당하였다. 이때 요사팟은 성당에서 기도를 마치고 사제관에 들어섰는데, 이 광경을 보고는 “형제들아! 당신들은 어찌해서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죽였느냐? 나에게 불만이 있으면 나를 상대할 것이 아닌가? 나는 숨거나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폭도들은 그 바람에 일시 멈칫했으나 요사팟에게 달려들어 몽둥이로 때리고 도끼로 찍고 창으로 찌르며, 결국은 총으로 대주교의 생명을 빼앗았다. 그들은 대주교를 죽인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의 유해를 강에 던져 버렸다. 신자들이 그의 유해를 찾아 폴로츠크의 주교좌성당에 모셨다. 그의 구원과 일치를 위한 열성은 생전에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고,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많은 사람이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고 한다. 그는 순교한 지 20년 뒤인 1643년 시복되었고, 1867년 시성되었는데, 그는 첫 번째 동방 교회의 성인으로서 “일치의 사도”라고 불린다. 사실 일치를 위한 노력은 교회만이 아니라, 이 세상, 이 사회에서도 무척 중요하다.일치되지 않는다면, 남는 것은 분열과 상대방에 대한 비난, 미움뿐일 것이다. 하지만 열이면 열 사람 결코 똑같을 수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 열 사람을 고쳐 주셨다. 예수님 당시에 나병이 어떤 병이고 얼마나 무서운 병이었는지는 그 나병 환자들 본인들이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병이었기에 다 나았더라도 공인을 받아야만 했다. 실상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하셨던 것이다. 이 말씀은 결국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인데, 그 말을 듣기 위해 가는 그들은 무척 긴장되면서도 흥분되고 부푼 기대를 했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사제에게 가는데 몸이 깨끗해졌다. 바로 그 순간 열 명의 나병 환자들은 분열되었다. 아홉은 사제의 말을 듣고 가족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가던 길을 계속 갔고 오직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로 돌아왔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너무 기뻐서 그랬을 것이다. 벅찬 감정에 취해 순간적으로 예수님을 잊어버렸을 것이고, 아니면 병이 나은 것에 너무 놀란 나머지 판단력을 상실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 그들은 은혜를 망각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육신의 치유에 감사할 줄 알았던 그 한 명에게는 영혼의 구원까지 덤으로 주어졌다. 단지 감사해야 할 일에 감사드린 것뿐인데,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는 말까지 듣게 된다. 결국 작은 감사가 더 큰 감사를 불러온 것이다. 사실 행복해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동안 행복해진다. 감사할 일이 많아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써 더 많이 감사할 일이 생긴다. 그러니 행복하고 싶다면, 구원받고 싶다면 적어도 우리 일생의 십분의 일만이라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만해야 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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