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1월 13일 목 [녹]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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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5-11-13 조회수55 |
복음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7,20-25 그때에 20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2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을 하루라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23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저기에 계시다.’, 또는 ‘보라, 여기에 계시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 24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25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2025. 11. 13 ; 답십리 본당) 아마도 지금쯤이면 오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는 학생들이 첫 번째 시간인 국어 시험이 끝나고 수학 시험을 시작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일 것이다. 《주홍글씨》란 소설로 잘 알려진 작가 호손(Nathaniel Hawthorne, 1804-1864)이 쓴 <큰 바위 얼굴>이란 단편 소설이 있다. 주인공 어니스트가 사는 마을에는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이 나타나 그 마을을 이끌 것이라는 예언이 있어 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 있었다. 어니스트는 온순하고 겸손한 소년으로 학교에는 가지 않지만 큰 바위 얼굴을 선생님으로 여기며 큰 바위 얼굴이 자기를 알아본다고 믿었다. 첫 번째 예언의 인물 부자, 개더골드가 나타났지만 탐욕이 가득 찬 얼굴이어서 어니스트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청년이 된 그는 큰 바위 얼굴을 보면서 명상에도 잠기면서 지혜와 교훈을 얻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번째 예언의 인물 올드 블러드 앤드 선더 장군이 나타났다. 그는 힘이 넘쳐흐르고 굳은 의지가 담기긴 했지만 격전과 모진 고난에 찌든 얼굴이고 큰 바위 얼굴처럼 선량한 지혜와 따사로운 자비심은 찾아볼 수가 없어서 실망하였다. 중년이 된 어니스트에게 세 번째 예언의 인물인 정치가 올드 스토니피즈가 나타났지만 큰 바위 얼굴이 지니고 있는 장엄함이나 위풍, 하느님과 같은 위대한 사랑의 표정을 찾아볼 길이 없었다. 그의 얼굴에는 권력과 명예만을 쫓다 지친 우울한 빛이 있어 어니스트는 실망하였다. 그러나 어니스트는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을 기다리며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면서 세월은 빠른 속도로 지나, 어니스트의 이마에는 많은 주름이 생기고 양쪽 뺨에도 고랑이 생겼다. 누가 보아도 인자한 할아버지의 생김새였다. 그의 생김새는 늙었지만, 어니스트의 머릿속에는 많은 현명한 생각이 깃들였다. 그 증거로 많은 사람이 알고 존경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어니스트는 한 시인의 시를 읽게 되었다. 그 시는 어니스트의 영혼에 강력한 충격을 주었다. 그래서 매일 큰 바위 얼굴에게 이 시를 쓴 사람이 큰 바위 얼굴을 닮을 자격이 있냐고 물어보았지만, 큰 바위 얼굴은 미소를 짓는 것 같았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집에 한 나그네가 찾아왔다. 어니스트는 그냥 지나가는 나그네인줄 알고 대접하다가 서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대화를 하다 차츰 그 사람이 책을 쓴 시인임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쓴 시는 자신의 생활과 일치되지 못하였다며 용서를 구하였다. 그리고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이 어니스트라고 말하면서 축하해주었다. 처음에 어니스트는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시인은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이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어니스트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저녁노을을 받고있는 그의 얼굴은 시인이 말한 것처럼 큰 바위 얼굴이랑 똑같이 생겼음을 깨달은 시민들은 어니스트를 축하하고 격려해 주었다. 어니스트는 그때야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큰 바위를 닮은 위대한 인물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큰 바위를 쳐다보며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안에서 나온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던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에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라고 대답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평화와 기쁨을 늘상 외부에서만 찾는다. 하지만 자신의 참된 행복은 결코 외적인 요인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왜 이러한 집안에서 태어났나? 나는 왜 이렇게 지지리도 복이 없나? 등 자신의 신세타령만 한다고 행복의 열쇠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행복은 자신을 받아들이며 하느님께서 주신 자신만의 보물을 찾고 가꿀 때 얻어지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는 바로 우리 안에 있다고 하셨다. 우리가 우리들에게 맡겨진 하나하나의 일에 충실하며 성실하게 임할 때, 우리는 바로 우리 안에서, 우리 주변에서,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 안에서 참된 일치와 평화 그리고 기쁨을 발견할 수가 있으며 바로 그것이 하느님의 나라이다. 큰 바위를 바라보면서 충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기다리던 어니스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큰 바위를 닮은 모습으로 변하였다.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예수님을 닮으려고 노력하며 충실하게 살아갈 때, 하느님의 나라는 내 안에, 내 집안에 그리고 내 공동체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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