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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28일 [녹] 연중 제8주간 목요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6-05-28 조회수58

복음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46-52

그 무렵 46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군중과 더불어 예리코를 떠나실 때에,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47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기 시작하였다.

48 그래서 많은 이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9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너라.” 하셨다.

사람들이 그를 부르며,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 하고 말하였다.

50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51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눈먼 이가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52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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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8주간 목요일

(2026. 5. 28 ; 답십리 본당)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가진 제국을 세운 사람은 몽골의 칭기즈칸이다. 그가 남긴 말들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배운 게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이런 말을 한 걸 보면 칭기즈칸은 매 순간 ‘~에도 불구하고라는 논리를 간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처럼 우리도 ‘~에도 불구하고라는 논리를 항상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논리만이 우리를 행복과 성공으로 유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에도 불구하고라는 논리보다는 ‘~때문에라는 논리를 더 선호한다. , 다른 것에, 사람에 책임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말과 행동을 많이 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을 가까이 두려고 할 때 ‘~때문에라고 말하는지, 아니면 ‘~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더 많이 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로부터 믿음을 인정받은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 역시 ‘~ 때문에보다는 ‘~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음가짐을 가졌었다.

 

   그는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자 그분께 자비를 청하였다. 사람들이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예수님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시자,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예수님께 달려갔다. 눈먼 이가 어떻게 예수님께 다가갔는지 모르겠지만, 바르티매오가 예수님께 바란 것은 돈 한 푼 달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눈을 뜨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스스로 일하지 않고 저절로 오는 모든 혜택을 누리려고 하고, 스스로 찾지 않고 저절로 얻어지기를 바라는 거지 근성중에 자기 연민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자신의 장애에 대해 스스로 연민에 빠져 있거나, 그 장애를 다른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불러일으켜 생존을 도모하는 무기로 사용하는 경우이다. 그래서 거지는 단순히 물질적인 빈곤 상태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장애를 신체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극복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기보다 오히려 장애 뒤에 숨어서 그 장애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거지이다.

 

   그렇게 본다면 눈먼 거지였다고 전해주는 바르티매오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예수님께 갔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벗어 던진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심한 일교차를 가진 기후의 이스라엘에서 겉옷은 생활필수품이었고, 신분을 드러내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바르티매오의 이런 행동은 전적인 믿음의 표현이면서, 자기 연민에 갇힌 거지 신분을 벗어던진 것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남아있는 체면, 알량한 자존심까지도 다 던져버리겠다는 표현이다. 그간의 슬프고 서글펐던 과거, 끔찍하고 혹독했던 지난날을 모두 내던지고 예수님과 함께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표시로 입고 있던 옷을 던져버렸던 것이다.

 

   이는 영성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바르티매오를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자신의 약함과 죄스러운 상처만 붙들고 자기 연민에 빠져 있지 말라는 것이다. 오히려 용기 있게 툭툭 털고 일어나 주님께 자비를 청하라는 것이다. 또 영적인 눈을 뜨고 건강한 신앙인이 되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역시 우리가 입고 있는 겉옷을 벗어 던져버리면 좋겠다. 우리에게 덧씌워진 위선과 부풀림, 겉꾸밈과 체면을 과감하게 벗어버리고 알몸으로, 홀가분하게 그분 앞에 서면 좋겠다. 그러면 바르티매오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새 삶, 새로운 눈, 새 인생을 선물로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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