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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강론

2024년 7월 1일 연중 제13주간 월요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4-07-01 조회수100

복음

<나를 따라라.>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8,18-22

그때에 18 예수님께서는 둘러선 군중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호수 건너편으로 가라고 명령하셨다.

19 그때에 한 율법 학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스승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21 그분의 제자들 가운데 어떤 이가,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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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강론(2024.07.01. / 연중 제 13주간 월요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많은 군중이 몰려들자 제자들에게 호수 건너편으로 가라고 명령하신다. 제자들을 군중에게서 떼어놓으시는 것인데, 제자들이 아직 제자로서의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한지라 군중에 휘둘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오늘 복음에는 대조를 이루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겠다는 한 율법 학자를 만나셨다. 하지만 그는 육신의 생각으로 예수님을 따르려고 했던 것 같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이 이 같은 생각으로 주님을 따르려고 한다. 육신의 생각은 그 동기가 하느님의 영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유익에 있으므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육의 관심사는 하느님을 적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것은 하느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육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로마 8, 7-8)라고 하였다.

어쩌면 율법 학자의 결단 속에는 시련이나 고통에 대한 각오가 없었나 보다.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는 영원한 기쁨과 희망과 값진 영적인 보물이 뒤따르지만, 고난과 시련도 따르며 이를 각오하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 그래서 바오로는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위하는 특권을, 곧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하여 고난까지 겪는 특권을 받았습니다.”(필리 1, 29)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당신을 따르는 삶은 거처를 지상에 두지 않는 삶임을 말해준다. 곧 자신의 편리와 안정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오히려 떠돌이로서 불투명한 삶, 곧 순례자로서의 삶이라고 알려준다.

 

또한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달라는 제자의 요청을 거부하셨다.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이 그토록 중요시하였던 장례 의무까지도 무시하며 자신을 따르라고 하신 까닭은 우리가 하느님께서 정해 놓으신 시간으로 초대받았으며, 그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절박하기 때문이다. 또한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처럼 죽음이 아닌 생명을 위해 자신을 투신하라는 것이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라는 말씀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 생명의 부르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고집스럽게 죄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많은 순간 말로써 험담과 거짓과 중상모략을 하고, 죽음의 문화에 동참하는 행동을 하며, 미움과 증오, 시기 질투, 온갖 탐욕적인 생각을 한다. 생명을 지니고 살면서도 역설적으로 반생명적인 말과 생각과 행동을 하며 살아간다면 죽은 이들의 장사를 지내는 죽은 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과거 지향적 삶에서 벗어나 과거를 현재화하고 미래를 현재화하라는 말씀이다. 과거에 묶여 사는 사람은 바리사이나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큰아들처럼 사사건건 불평불만을 터트리며 하느님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답게 어렵고 힘들고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엠마오의 제자들이나 베드로처럼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은총과 뜻을 헤아려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진정 어디에서 머리 기댈 곳을 찾고 있는가?, 아니면 대체 어디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가? 혹 자기 자신인가?, 아니면 하느님인가? 또한 생명의 길을 가고 있는가?, 아니면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가? 혹 여전히 죽은 것들과 죽을 것들에 애착하고 매여 있지는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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