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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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4-07-04 조회수63 |
복음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1-8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배에 오르시어 호수를 건너 당신께서 사시는 고을로 가셨다. 2 그런데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3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속으로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고 생각하였다. 4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품느냐? 5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6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그런 다음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7 그러자 그는 일어나 집으로 갔다. 8 이 일을 보고 군중은 두려워하며,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미사강론 (2023.07.04. / [녹] 연중 제 13주간 목요일) 오늘 복음을 보면,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예수님께 데려왔다. 중풍은 혈관에 피가 제대로 흐르지 못해서 몸이 마비되는 병이다. 그래서 중풍 병자는 남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고, 삶에 대한 좌절과 자신을 돌보아주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미움을 갖기 마련이다. 예수님께 그런 사람을 데리고 온 것은 ‘병을 고쳐 달라’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치유를 통해 비뚤어진 마음을 돌려놓으려는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고치지 못하는 중풍이지만, 예수님만은 고쳐 주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중풍 병자를 데려왔던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믿음을 긍정적으로 보시고 예수님은 “얘야.”라고 사랑스럽게 부르시며, 먼저 흐트러진 영혼을 치유하신다. 몸이 마비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손가락질했던 사람들, 돌아서며 흉보던 사람들, 아니 죄인이라며 침까지 뱉었던 모든 일들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달래주신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에서 질병은 인간이 하느님에게 잘못하였거나, 하느님의 분노를 사서 받는 벌이 질병이나 사고로 나타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든 사람은 하느님의 벌을 받은 사람으로 간주하였다. 신약 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사고를 하고 있었다. 그런 탓에 오늘 복음에 나오는 중풍 병자 역시 자신은 하느님의 벌을 받았다는 죄의식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병의 치유에 앞서서,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하신 것이다. 이런 예수님을 율법 학자들은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오히려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하며 비난하였다. 그건 하느님의 영역에 속해 있는 사죄(赦罪)를 감히 인간인 예수가 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하고 말씀하신다. 즉 둘 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렵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죄를 용서하는 일은 하느님께만 있는 권한으로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하고 말하는 것은 쉽다. 왜냐하면 죄를 용서받은 결과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중풍 병자에게 “일어나 걸어가라.”하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여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정말로 일어나서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결과가 명확히 드러난다. 그러니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말하는 것이, 말하기에는 더 쉽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더 어렵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시며 당신 자신을 증명해 보이신다. 예수님의 말씀에 중풍 병자는 “일어나 집으로” 간다. 이런 오늘 복음은 중풍 병자의 치유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역설적으로 예수님의 권한을 이야기한다. 예수님은 중풍 병자를 낫게 하는 더 어려운 일을, 실제로 그가 병이 나아서 걸어가게 하실 수 있는 분으로 드러나신다. 따라서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하신 말씀 역시 이루어질 수 있고, 예수님께도 하느님처럼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우리가 쓰는 말에는 하느님의 능력이 담기기도 하지만, 악의 권세를 퍼뜨리는, 미움과 원망을 가득차게 만드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참된 치유는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잃고 마는 육체적 치유에 머물지 않고, 생각과 가치까지 바꿀 수 있는 영적인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용서할 때 그 사람을 살리는 하느님의 능력의 도구가 된다. 그러니 오늘은 마음의 악한 기운을 모두 몰아내려고 애쓰는 하루가 되도록 해 보았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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