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9일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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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4-07-09 조회수57 |
복음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32-38 그때에 32 사람들이 마귀 들려 말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마귀가 쫓겨나자 말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 그러자 군중은 놀라워하며,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예수님의 시선으로 살기” (2024.07.09. / [녹] 연중 제 14주간 화요일)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군중들을 마주하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목자 없는 양들처럼”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그대로 드러내십니다. 그들을 이끌어 줄 만한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도 나름의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황제와 총독도, 종교 지도자들도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율법을 가르쳐준다는 율법학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지도자들의 관심사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나 ‘가엾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황제와 총독은 자신의 권위와 재산을 높이기에 혈안이었고, 종교 지도자들은 초심을 잃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율법의 기본 정신을 버리고, 그저 율법으로 다른 이들을 옭아매기만 했습니다. 그들은 장님도 귀머거리도 벙어리도 아니었지만, 하느님과 이웃과 소통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몇 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아주 짧은 공생활 기간 동안, 참 많은 치유를 베푸셨습니다.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지붕을 뚫고 내려온 중풍 병자를 고쳐 주셨고, 앉은뱅이를 일어서게 해 주셨으며, 오늘도, 사람들이 데려온 마귀 들린 사람을 예수님께서는 정성껏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 다가온 이들의 대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회피하는 병자나 사회적 약자, 또는 죄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마침내 낫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품으셨던 “가엾은 마음”은, 그 시대의 가장 약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향했습니다. 예수님을 시기하던 바리사이들은, ‘마귀 우두머리’를 들먹거리며, 그분 능력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정작 마귀에 넘어간 이들은, 백성들을 현혹하고 이득에 눈먼 그 거짓 예언자들과 위선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잘못된 이념으로 백성을 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던 그 세력과 늘 맞서 싸우셨습니다. 개인의 ‘윤리적 죄’보다, 그들이 악과 타협하게 만든 ‘사회적인 악’과 사탄의 세력에 대항하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도, 개인의 잘못보다 사회적 구조로 생긴 악의 결과들이 훨씬 많고 심각합니다. 양극화와 빚에 떠밀린 서민들, 가진 자들의 탐욕을 부추기고 가난한 이들의 활로를 없애는 세력들… 측은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눈길을 이제 그리스도인인 우리도 지녀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이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 공감과 이해를 위해 애쓰신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들입니다. ‘가엾어하는 마음’이란, 상대방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며 공감할 줄 아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헤아릴 줄 아는 이 공감이, 이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모든 일의 시작입니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다른 피조물들과 달리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품위있게 살아갈 수 있지만, 동시에 본능도 지니고 있어서, 특히 삶이 위협받거나 힘들다고 느끼면 당장의 이익을 좇게 됩니다. 하느님이 주신 본래의 “사람다운 모습”을 잃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유혹과 싸워야 합니다. *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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