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3일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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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4-07-13 조회수52 |
복음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24-3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25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집주인을 베엘제불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 26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28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30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3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32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그것을 두려워 말고, 이것을 두려워하여라.” (2024.07.13. / [녹] 연중 제 14주간 토요일) 인간이 하느님의 거룩함 앞에 서면 “황홀감”과 “두려움”의 원초적인 감정을 갖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거룩하신 하느님의 현현을 목격한 이사야가 황홀경에 빠지면서도 동시에 두려움을 강하게 느끼면서, 자신을 “입술이 더러운 사람”으로 표현하는 모습은, 하느님을 체험한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를 정신학계에서는 “양가감정”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합니다. “양가감정”(兩價感情, Ambivalence)이란, 어떤 대상에게 서로 대립되는 두 감정이 동시에 혼재하는 정신 상태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지 않아도, 하느님을 생각할 때면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과 생각들이 교차합니다. ‘하느님, 저를 도와주세요.’ ‘하느님, 저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느님이 벌을 내리시면 어쩌지?’ 우리는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거나 하느님께 집중하는 순간에, 마음이 사방팔방으로 뛰는 것을 느낍니다. 인간이 갖는 두려움은 일단 가장 원초적으로, 나의 근원인 하느님에게서 벗어나 있다는 ‘죄의식’입니다. 그와 동시에, 마치 눈뜬 아담과 하와처럼, 하느님의 거룩함에 부끄러워하는 인간의 ‘속됨’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숨기고 있는 것이 탄로 날까 두려워 사람들을 기만하고, 나의 약점과 비밀을 더 철저히 숨기며, 오히려 타인이 범한 죄악의 실상을 파헤치고 폭로하여 그보다 낫다는 위선의 그림자에 숨어 버립니다. 하지만 어둠은 결국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이 진리를 이길 수 없음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숨기려는 죄악을 여과없이 드러나게 하시고, 우리의 어리석은 교만을 꺾으십니다. 욥은 고통 속에서 증언하며 외쳤습니다. “주님을 경외함이 곧 지혜며 악을 피함이 슬기다.”(욥 28,28) 예수님께서는 오늘,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죄를 숨기기보다, “머리카락까지 세어 두신” 하느님의 완전한 거룩함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청하며, 하느님의 도구로 온전히 쓰이기를 바라는 ‘뉘우침과 보속’의 삶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태도입니다. 우리가 보통 두려워하는 것은, ‘알지 못하는 대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두려움은, ‘우리를 잘 아시는 하느님’을 향한 ‘확실한’ 경외심입니다. 내가 받을 불이익 때문에, 내가 손해를 보고 희생해야 할까 봐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할 때도 있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신자라는 사실을 숨기려고 하거나, 나서서 좋은 일 하기를 주저할 때도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조금 용감하고’ ‘조금 힘쓰는’ 일은, 그때가 아니면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하느님의 현현 앞에 두려워하면서도, “제가 있지 않습니까?” 하고 용기를 냈던 것처럼, 우리도 일상에서 종종 다가오는 ‘도전’과 ‘결단’의 순간에 좀 더 의연하게 응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와 성사를 정성껏 봉헌하면서, 날마다 하느님의 현존 앞에 점점 떳떳해지기를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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