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2일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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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4-08-12 조회수64 |
복음 <사람의 아들은 죽었다가 되살아날 것이다.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 ------------------------------------------------------------------------------------- 미사강론(2024.08.12. / [녹]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두 번째 수난 예고와 성전 세에 관한 내용이다. 우선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지만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왜 그래야 하는지, 또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고, “그들은 몹시 슬퍼하였다.”라고만 전해준다. 그런 걸 보면 이미 어느 정도는 다가올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알고, 또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제자들의 귀엔 수난과 죽음은 크게 들리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다는 부활은 그냥 스쳐 들린 것 같다. 그러니 슬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어지는 내용은 성전 세의 납부 문제로, 오직 마태오 복음서에만 나오는 내용이다. 이 당시 세금은 세 가지로, 토지세(土地稅)와 소득세, 인두세(人頭稅)가 있었다. 토지세는 곡식의 1할을 바쳤고, 소득세는 소득의 100분의 1을, 인두세는 14세 때부터 의무적으로 바쳐야 했다. 그리고 서기 70년 로마군이 예루살렘 성전을 불태우기 전까지 사제를 제외한 20세 이상의 모든 유다인 남자들은 일 년에 한 번 성전 세를 바쳐야 했다. 이 성전 세는 이스라엘 은전 반 세겔로 이틀 치의 품삯 정도였는데, 로마 총독이 로마제국을 위해 거둬들이던 세금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자체적으로 징수하던 세금으로 성전 유지비로 사용되었다. 성전 세를 징수하는 사람의 물음에 베드로는 예수님도 성전 세를 낸다고 말했다. 이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세금을 거두느냐?”라고 질문하셨고, 베드로가 “남들에게서입니다.”라고 하자,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라고 하신다. 이 말을 직역하면, ‘그렇다면! 아들들은 자유이다.’라는 말로 예수님 자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기에 당연히 성전 세가 면제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아들들” 혹은 ‘자녀들’이라고 복수형으로 나오는 것은 면세의 대상자가 다수임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고, 제자들에게 관련된 것이다. 스승인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기에, 제자들도 스승으로 말미암아 “자녀들”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어서 그들도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성전 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원래 길 가운데서 걸려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 또는 장애물을 놓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단어는 ‘죄짓게 하다’로도 번역되는데, 이것은 상대로 하여금 죄짓도록 유혹하는 악한 행위를 가리킨다. 또한 이 단어는 ‘귀에 거슬리다’, ‘투덜거리다’라는 뜻도 있다. 이것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불쾌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행위를 말한다. 예수님께서 성전 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당연한 권리를 가지고 계셨지만,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대다수의 유다인들에게 이것이 성전에 대한 모독으로 불쾌하게 여기고 분개할 수 있는 사건으로 부각 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앞으로 반드시 수행해야 할 하느님 아버지의 중요한 사명이 남아 있었기에, 더 큰 목표를 위해 당연히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양보하신다는 것이다. “호수로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예수님은 이 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당연히 율법의 규정에서 면제되시지만, 자신의 권리를 양보하시어 겸손하게 율법에 순종하셨고,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기적적인 방법을 통해 성전 세를 마련하심으로써, 예수님께서 권능을 가지신 하느님의 참 아드님이심을 보이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매우 신중하게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필요한 세금을 마련하시려고 당신 능력을 사용하셨다. 우리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진 것 없고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을 돕는 데 우리 능력을 이용해야 한다. 만일 이것이 다른 이들에게 피해나 걸림돌이 될 위험이 있다면 우리 권리마저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정당함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그것을 포기하면서 더 큰 가치를 지키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신앙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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