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4일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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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4-08-14 조회수62 |
복음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8,15-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5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16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17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9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형제를 위한 참된 사랑” (2024.08.14. / [홍]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폴란드의 성인 막시밀리아노 콜베는 14살에 수도회에 들어가, 24살에 ‘성모 기사회’를 설립했습니다. 이듬해 로마에서 사제가 된 성인은 선교사로 살다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에 갇혔습니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였을 때 체포되었는데, 그곳에서 수감자 한 명이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수용소 규칙으로 한 명이 탈출하면 열 명이 처형되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가족 때문에 괴로워했습니다. 콜베 사제는 그를 대신하겠다며 나섰고, 다른 아홉 명과 함께 아사형을 받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1982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막시밀리아노 콜베 사제를 ‘자비의 순교자’라고 칭하며 시성하였습니다. 성인의 희생과 자비 그리고 사랑은, 자기 목숨을 바쳐 인류를 구하신 예수님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벗어나 유혹과 죄에 빠진 사람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알려주십니다. 죄를 지은 형제를 함부로 단죄할 것이 아니라, 몇 단계에 걸쳐 신중히 타이를 것을 당부하십니다. 사랑은 자비와 선의로 채워지지만, 그렇다고 죄악에 타협할 만큼 느슨한 것은 아닙니다. 불의와 거짓 앞에서, 사랑은 침묵과 인내의 자세 대신 올바른 관계를 위한 정의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웃과의 사랑을, “관계의 회복”이라는 차원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죄는 어떤 형태로든 관계의 단절을 가져오기 때문에, 그를 꾸짖는 행위도 사랑에 속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자기기만과 편견에 빠진 사람까지 끌어안으라고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행위가 자칫 불의를 묵인하고, 거짓을 인내하는 그릇된 사랑으로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로의 잘못을 일깨워 주어야 하는 것은, 나에게 그가, 또 그에게 내가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나와 무관한 사람이라면 마음이 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나의 형제이기에, 나는 움직입니다. 그를 포기하거나 잃어버릴 수 없으므로 그의 잘못을 일깨워 형제로서 살아가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결국 내 이웃을 하느님의 길로 이끌고 권고하는 것은, 그 형제에 대한 나의 책임감 때문입니다. 교회는 서로의 회개를 촉구하고 격려하는 공동체이며, 섬세한 배려로 온유한 사랑을 드러냅니다. 심판자의 위치에 서라는 것이 아니라, 올곧게 진리를 증언하는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병든 마음과 생각을 치유하는 사랑에 아픔이 따르더라도, 진실을 보여주는 강직함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단계를 생략하고, 자기가 정의인 양 처음부터 이웃의 부족함을 고발하고 단죄합니다. 또 그와 진솔하게 이야기하기보다는 마음속에 미움을 품고 다른 이들 앞에서 뒷담화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예수님의 가르침은, 내 이웃을 포기하거나 단죄하는 대신 손을 잡아주라는 가르침입니다. 마음에 원망과 불평으로 남아 있던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줄 의지와 사랑이, 지금 우리에게는 있습니까?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그를 타일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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