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9일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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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4-08-29 조회수160 |
복음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17-29 그때에 17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18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19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0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21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22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23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24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25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26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27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28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29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오늘은 세례자 요한의 수난 기념일, 즉 세례자 요한의 순교를 기념하는 날이다. 전례력으로 한 개인의 수난을 기념하는 날로는 예수님의 수난을 기념하는 성주간, 특히 성 금요일과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함께 걸으신 고통을 기억하는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9월 15일) 뿐이다. 그리고 오늘 세례자 요한이 유일하다. 오늘 복음의 헤로데는 예수님의 공생활 당시 팔레스티나 북쪽을 다스리던 헤로데 안티파스이다. 그의 아버지는 헤로데 대왕(Herodes Magnus, 기원전 37-4)으로 예수님의 탄생이 자신의 왕권을 위협한다고 여겨 베들레헴에 살던 두 살 이하의 남자아이들을 모두 살해한 인물이다. 말년의 그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와 장남까지 처형하는 광기를 드러내다가 죽었다. 그의 유언에 따라 팔레스티나는 삼등분되었고, 그의 아들들이 다스렸다. 안티파스(Herodes Antipas, 기원전 4-서기 39)는 로마에서 공부할 때 이복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Herodias, 기원전 15?-서기 39?)와 가까워졌다. 그리고 왕이 되자, 그는 아내를 버리고 헤로디아와 재혼하였다. 그녀는 ‘마카베오 가문’의 공주였던 ‘미리암’(מִרְיָם)의 딸로, 정통 유다인이었다. 하지만 헤로데 가문은 이방인 출신이었다. 결국 안티파스는 헤로디아와의 혼인으로 유다인들로부터 호의적인 반응과 자신의 통치에 대한 순응을 원했던 것 같다. 그런 탓에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원하는 아내의 청을 거절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그가 의로운 사람인 줄 알면서도 처형을 묵인하였고, 세례자 요한은 두 사람의 공모로 살해된 셈이다. 결국 세례자 요한은 정치적 희생양이며, 인간 욕심 때문에 희생된 예언자였다. 그런데 성경에 드러난 요한의 삶을 보면 그는 한결같이 구세주의 오심을 외친 예언자였고, 구세주를 맞이할 준비를 시키는 예언자였다. 그렇기에 그의 사명은 사람을 준비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잘못된 것, 해서는 안 될 것, 지켜야 할 것들을 사람들에게, 또 왕에게 자신 있게, 과감하게 선포하였다. 그로 인해 그는 인간적인 욕심을 앞세우려는 이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럼에도 오늘날 헤로데의 모습을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만 간다. 자기 체면만을 내세우면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배려하지 않는 사람, 자기의 체면 때문이라면 정의와 사랑을 뒷전으로 밀어버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렇기에 옳은 것을 옳다고 하지 못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하지 못하고, 그저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두리뭉실하게 살아가자는 사람들에게 세례자 요한은 정의와 사랑과 진리에 어긋나는 일에 대해서는 끝까지 항거할 것을 가르쳐 주고 있고, 우리의 무뎌진 양심의 날이 바로 서기를 바라고 있다. 결국 오늘 복음과 이 기념일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가 아니라, 잘못을 보면 세례자 요한처럼 진실을 위해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된 일이라면 명예와 체면을 포기하면서라도 올바른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점점 이런 이야기가 힘을 잃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선보다 악이, 진실보다는 권력이, 사람보다는 재물이 가까운 세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악보다는 선을, 권력보다는 진실을, 재물보다는 사람을 선택하는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것이 하느님 나라에 한 발 더 다가가는 삶이기 때문이다. 참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 주님의 뜻이 펼쳐지는 세상이 되도록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하느님을 드러내고, 자기 욕심을 내세우기보다는 사랑을 먼저 보여주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완성될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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