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일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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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4-09-02 조회수179 |
복음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 미사강론 (2024.09.2. / [녹]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오늘부터 연중 제34주간 끝까지 평일 미사 복음으로 루카 복음을 듣는다. 루카 복음서는 예수님의 공생활 이전의 모습을 길게 소개한 뒤, 세례와 광야에서의 유혹, 그리고 갈릴래아에서의 선교 이야기로 예수님의 공생활을 소개한다. 예수님은 갈릴래아의 여러 회당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하셨는데, 주로 나자렛과 카파르나움을 중심으로 하여 갈릴래아 호수 주변에서 활동하셨다. 갈릴래아는 팔레스티나에서 비옥한 곡창지대이지만, 그곳 사람들은 대부분 소작인이어서 부자와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았다. 종교 지도자들은 이들을 죄인으로 낙인찍고 상종하려 들지도 않았다. 뿐만 아니라 갈릴래아는 잦은 봉기로 유명했던 탓에 유다 고위층 인사들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지역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스라엘의 수도가 아닌 이방인의 땅, 아픈 이들의 땅인 갈릴래아에서 복음 선포를 시작하셨다. 가난한 이, 빚 때문에 투옥되거나 잡혀서 유배당한 이, 육체뿐 아니라 마음까지 어둠 속에 있는 눈먼 이, 사회적으로 짓밟히고 억압받고 소외된 약한 이들, 고통에 울부짖는 이들에게 구원의 손을 내미셨다. 이렇게 예수님의 시작은 철저하게 밑바닥에서부터였다. 그런 그분께서 최초로 마주한 광경은 동족과 고향 마을 사람들의 불신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복음 선포를 시작하셨다. 예수님 시대 당시 유다인들의 안식일 집회는 주로 오전에 행해졌다. 집회는 주로 기도와 성경 봉독, 해설로 이루어졌다. ‘쉐마 이스라엘’(שְׁמַע יִשְׂרָאֵל, 이스라엘은 들어라) 기도로 시작되어, 18기도문 암송, 성경 봉독으로 이어졌는데, 성경 봉독은 첫 번째 독서로 율법서의 한 부분을, 두 번째 독서로 첫 번째 독서에 상응하는 예언서를 읽었다. 성경 봉독이 끝나면, 그에 따른 설교가 뒤따랐다. 유다인 남성은 누구나 설교할 권한을 부여받았다. 그러니 나자렛 회당에서 예수님은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이사야서 61장 1-2절의 예언을 읽으시고는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라고 하셨다. 즉 주님의 영을 받은 의로운 종은 곧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키며, 당신이 이 땅에 오셔서 공생활을 시작하는 시점에 이미 그 예언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이심을 증명하는 중요한 말씀이다.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앞으로 계속 성취될 예언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라고 하면서 은총의 말씀에 놀라면서도 그 말씀을 하찮게 여겼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왜 고향에서 기적을 행하지 않으시는지 엘리야가 사렙타 마을의 과부에게만 갔고, 엘리사가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고쳐준 이야기를 들어 설명하셨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완고한 이스라엘 대신 장차 당신을 맞아들여 치유 받을 다른 민족들을 가리킨다. 나자렛 사람들은 이 말씀에 분노하여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들의 난폭함은 터무니없는 것이었고, 자신들은 받아들이지도, 믿지도 않으면서 다른 민족들에게 주겠다니 질투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산 위 벼랑으로 끌고 가 거기에서 밀어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아직 수난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자렛 사람들은 신앙의 눈이 필요했는데 그러한 눈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그래서 계속해서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이 아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수님을 알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면서 화만 내고 있다. 그러니 예수님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자기 기준과 지식만을 내세우고 있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들 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실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항상 조그마한 일에서부터 예수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을 전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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