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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강론

2024년 9월 11일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4-09-11 조회수156

복음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20-26

그때에 20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21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22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23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24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25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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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강론 (2024.09.11./ [] 연중 제 23주간 수요일)

 

  사람이 원하는 행복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행복에 대한 기준과 판단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행복하다는 잠시의 느낌과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다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참된 행복에 대해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세상이 주는 행복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사람, 굶주리는 사람, 우는 사람, 미움과 박해를 받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언하신 것은,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다가 겪게 되는 가난과 슬픔, 굶주림에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반대로 부유하고, 배부르고, 웃는 사람들에게 불행을 선언하시는 것은, 그들이 누리고 있는 행복이 세상의 재화를 독식함으로써 온 것이라면, 그런 행복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깨우쳐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서 받을 박해를 네 가지로 표현한다.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라고 하신다.

  첫째는 미워하는 행동이 나타날 것으로 예고한다. 미워하면(μισήσωσιν)은 어떤 행동에 대한 반감뿐만 아니라 풀기 어려운 적개심을 뜻하는 데 사용되는 단어이다. 여기서도 예수님을 믿는 이들에 대해 강한 적개심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한다. 이러한 적개심은 믿는 자들을 쫓아내는 실제 행동으로 나타났다.

  둘째 쫓아내고로 번역된 단어(ἀφορίσωσιν)내쫓다, 배척하다라는 뜻이며, 실제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믿는 자들을 공동체로부터 추방하거나 소외시켜 버렸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고, 믿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 대하여 모욕까지 하게 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모욕하고(ὀνειδίσωσιν)는 깔보고 욕되게 하는 것을 말하는데, 믿지 않는 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을 믿는 것이 부당하고 어리석다고 여겼기에 믿는 자들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루카 복음사가는 중상하면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원문을 직역하면 너희의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리면이라는 뜻이다. 이는 믿는 사람들이 당할 핍박을 묘사하고 있다.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이며 제자라는 그 이름 자체로 말미암아 적대자들에게 악하다고 단죄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열된 네 가지 경우가 모두, 예수님 때문에 받게 되는 고난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고난을 받는 자들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예수님은 선포하신다. 그래서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라고 하신다. 여기서 그날은 바로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는 때, 즉 세상에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박해받는 때이다. 루카 복음사가는 기뻐하고 뛰놀아라.”를 단순 과거 명령법으로 쓰고 있다. 단순 과거 시제를 사용하여 어느 특정 시간에 일시적으로 취해야 할 것을 표현하는데, “기뻐하고 뛰놀아라.”라는 명령은 그날에라는 시간에 한정하고 있다. 박해가 지나간 후에 그 고난의 의미를 생각하며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핍박의 현장에서 적극적인 기쁨의 행동을 취하라는 명령이다. 그런 탓에 순교자들은 순교 장소에서, 처형 직전까지 복음을 선포하며 자신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이야기하였다.

 

  우리 시대는 모든 것의 과잉에서 오는 고통이 크다고 한다. 넘치도록 많은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혼란스럽고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덜어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완벽하지 않은 것을 사랑할 수 있는 용기, 그래서 영원하지 않을 세상에 대한 집착에서 오는 옛 인간의 행실들, 곧 불륜, 더러움, 욕정, 탐욕과 분노, 격정, 악의, 중상, 거짓말을 내 인생에서 덜어 버리는 것이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참 평화와 기쁨을 맛보는 새 인간의 행복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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