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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강론

2024년 9월 23일 월 [백]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4-09-23 조회수165

복음

<등불은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8,16-18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6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17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18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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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강론 (2024.09.23. / []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흔히 우리는 성인(聖人)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성향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하며 타고난 성격적인 결함들도 철저히 배제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미 성인이 되신 분들 가운데서 어떤 분들은 아주 과격하고 조급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또 어떤 분들은 평생토록 자신이 안고 있던 심각한 결함들을 극복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성인들이 우리와 다른 점은 그런 결핍들을 애써 감추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오해하기도 했고 성인품에 올리는 것을 못마땅해 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성인이 되기 위해 강한 자기 통제력은 기본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또 과도한 열정이 억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열정 역시 성덕(聖德)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 열정은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전환된 것이어야 한다. 영적 열정 안에는 악습과 편견을 물리치기 위한 강력한 힘이 포함되어 있다. 왜냐하면 열정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불순물들을 태워버리는 불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성인들은 자신 안에 내재되어 있는 열정, 다시 말해서 인간적인 욕구들과 힘들을 더 가치 있는 곳에 사용한 사람들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눈여겨볼 아주 특별한 성인이 한 분 있다. 오늘이 축일인 피에트릴치나(Pietrelcina, ‘작은 돌이란 의미)의 비오 신부님이다. 사람들은 이분을 오상(五傷)의 비오 신부님이라고 부른다. 그는 말마디 그대로 쓸모없는 돌밭투성이뿐인 가난하고 척박한 농촌 출신이다. 그는 16세 때인 1903년 카푸친 작은형제회에 입회하여 191023세의 나이로 사제서품을 받았다.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따르고자 했던 그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깜짝 놀랄 일이 그에게 발생했다.

191831세에 그는 예수님처럼 오상을 받게 된다. 이 오상으로 그의 일생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으며, 십자가의 길이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그에게 몰려들자 교회 당국에서는 그의 삶을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1923년부터 그는 공적 성무 활동이 정지되어 수도원 경당에서 홀로 미사를 집전하였다.

 

   비오 신부님이 오상을 받은 후 매일 흘렸던 혈액의 양은 대략 찻잔으로 하나 정도였다. 사람들은 신부님, 얼마나 아프세요?”라고 물었다. 이에 굵고 네모 난 못을 손에 대고 망치로 힘껏 때려 박은 다음에 그 못을 뺑 돌려보십시오. 꼭 그만큼 아파요.”라고 대답하였다. 오상으로 인한 영광과 기쁨도 컸지만, 오상으로 인해 그분이 매일 받았던 고통은 처절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받은 오상을 통해 매일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생생하게 느끼며 묵상했다.

 

   세상 사람들을 성화의 길로 이끌고자 했던 그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비오 신부님은 종종 사람들에게 큰 영적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는 고해자 각자를 다르게 다루었다. 진심으로 뉘우치고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다정하게 팔을 펼쳐 사랑스런 아들을 맞이하듯이 인사했고, 고해가 끝난 후에도 잘 가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대를 사랑하고 계십니다.”라는 말로 작별 인사를 건넸다. 때로 고해성사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들, 그저 호기심에 한 번 찾아온 사람들, 중요한 죄를 고의적으로 빠트리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거칠고 엄한 어조로 꾸짖으셨다. 심지어 고해소에서 내쫓기도 하셨다.

간혹 부끄러움에 죄를 숨기거나 축소시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인간의 내면을 꿰뚫어 보던 그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입술만 나불거리면서, 어쩌면 그렇게 하느님을 얕본단 말입니까?” 윤리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 그릇된 생활을 고치려는 의지가 아주 약한 사람이 찾아왔을 때, 놀랍게도 그는 이 더러운 놈!”이라고 외쳤다. 며칠 후, 그토록 모질게 쫓겨난 그 사람이 울면서 다시 나타났다. 그제야 그는 돌아온 탕자를 맞이하는 아버지처럼 활짝 팔을 벌리며 그를 맞이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라고 하셨다. 말씀을 잘 받아들여 실천하는 사람들은 계속 더 큰 하느님 체험을 갖게 될 것이며,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가 실천하지 않으면 그 말씀의 중요성도 모르고 그러한 말씀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 말씀을 잃어버려도 잃어버린 줄도 모른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 11, 15)라고 하신다. 이기심과 욕망을 벗어버리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이, 믿음도 나를 비우면 더 채워 주시는 하느님을 만나고자, 날마다 조금씩 내가 실천할 수 있는 비움의 수행을 통해 성장한다. 그러니 오늘은 무엇을 비울까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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