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6일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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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4-09-26 조회수177 |
복음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7-9 그때에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께서 하신 7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8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9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미사강론 (2024.09.26.목 / [녹]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오늘 복음의 마지막에는 헤로데가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라고 전해준다. 그렇다면 헤로데는 왜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을까? 예수님을 죽이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세례자 요한이 되살아났다는 소문을 듣고 확인해보고 싶어서였을까? 복음서가 전해주는 내용을 보면,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헤로데도 세례자 요한만큼은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죽이고 싶었지만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세례자 요한이었기에 쉽게 죽이지 못하고 있었는데 딸의 소원 때문에 세례자 요한을 죽였다. 그 일 이후 헤로데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을 텐데, 세례자 요한이 되살아났다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사실 헤로데에겐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었다. 다만 세례자 요한처럼 사람들의 존경과 지지를 받는 사람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을 뿐이다. 왜냐하면 혹시나 자신의 정치적 영역에 또다시 누군가가 끼어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보려 하였던 것이다. 만나서 회유를 해 보고, 안 되면 죽이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였으니 예수님을 만난다 하더라도 그분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예수님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 당시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세례자 요한이 헤로데에게 죽임을 당하자 그를 기억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되살아난 세례자 요한이라 여겨 그분을 만나보려 따라다녔다. 그래서 그들은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세례자 요한이라는 색안경을 쓰고 예수님을 보기에 그들은 예수님의 참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과는 삶의 모습이 너무나 다른 예수님이시기에 결국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떠났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언자들의 모습에 예수님을 맞추어버렸다. 그래서 로마의 지배와 지긋지긋한 가난을 없애줄 위대한 예언자가 바로 예수님이라고 여기고는 그분을 만나고 싶어 따라다녔다. 그러다 보니 “‘엘리야가 나타났다.’하는가 하면,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예수님은 예언자들처럼 정권을 가진 이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거나 드러내놓고 그들을 저주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들의 손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기에 초라해지는 예수님을 보면서 떠났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다. 아무것도 모르고 답답할 정도로 스승의 가르침을 이해 못하는 열두 제자들이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정치적 인물로, 세례자 요한으로도, 예언자로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몰랐다. 그렇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좋아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다녔다. 하지만 예수님과 함께 하는 동안 그들의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와 같은 상태에 예수님의 모습이 하나둘씩 칠해졌다. 그래서 훗날 그들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 구세주로 고백한다. 우리들 또한 예수님을 늘 만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보기에 만나고 싶어 하는지, 어떤 이유로 만나고 싶어 하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설령 우리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 구세주로 고백한다 할지라도, 예수님 자체, 하느님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면, 그래서 무언가를 바래서라면 헤로데의 모습과, 요한을 기억하는 사람들, 예언자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지워버리는 연습을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로 만들어서 예수님의 참모습을 그려 주십사 청하였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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