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8일 월 [홍]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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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4-10-28 조회수41 |
복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라고 부르셨다.> ------------------------------------------------------------------------ 미사강론 (2024.10.28.월 / [홍]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두 사도 중에서 우선 시몬의 이름은 “응답하다, 듣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그는 가나안 출신으로(마태 10, 4 ; 마르 3, 18) 열혈당원이었다(루카 6, 15 ; 사도 1, 13). 열혈당원은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이며 율법주의자들이다. 이들은 메시아가 자유롭고 독립된 유다인들만의 국가를 만들어주실 것이라 여기고, 자신들의 왕은 오직 하느님뿐이기에 다른 어떤 민족도 유다인들을 지배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당시 자신들을 지배하던 로마 제국에 대한 세금 납부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로마인들의 통치 자체가 하느님께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하여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켰다. 반면 “존경받는” 또는 “찬미하리라”는 뜻을 지닌 유다는 “마음이 크고 높음”이란 의미의 ‘타대오’라고도 불린다. 그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로 명기되기도 하고(루카 6, 16 ; 사도 1, 13), 사도 야고보와 함께 알패오의 아들 타대오(마태 10, 3), 또는 그냥 타대오(마르 3, 18)라고 성경에 명기되어 있다. 그가 열두 사도의 명단이 아닌 다른 곳에서 유일하게 등장하는 곳은 최후 만찬 자리에서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요한 14, 22)하고 묻는 구절이다. 이를 통해 사도 유다 타대오는 혁명당원 시몬처럼 예수님이 정치적인 메시아이시기를 바랬던 것 같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시몬은 처음에 이방인과 유다인들에게, 나중에는 이집트, 키레네, 리비아 등에서 복음을 전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고 한다. 그리고 유다도 처음에는 팔레스티나에 머물다가 아라비아,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선교하였다. 두 사람이 마지막에 복음을 전하였던 곳은 페르시아이다. 이곳에서 시몬과 유다는 함께 순교하였는데, 전설에 의하면 시몬은 톱으로 몸이 둘로 잘리고, 유다는 도끼에 목을 잘려 순교했다고 한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선발한 열두 제자들의 명단이 나오는데, 그들은 뛰어난 성덕이나 학식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뛰어난 재능이나 높은 지위를 가졌던 사람도 아니었다. 그들은 그 시대의 지극히 평범하거나 보잘것없는 보통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열혈당원과 세리처럼 서로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달갑지 않은 시선을 받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이들을 뽑으신 까닭은 그들이 자신의 힘과 능력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님의 힘과 능력에 의지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총알택시 기사와 신부님이 죽었다. 그런데 총알택시 기사는 천국으로 보내지고, 신부님은 지옥으로 가게 되었다. 신부님은 너무 억울한 마음에 하느님께 여쭈었다. “왜 저는 지옥에 보내고, 저 총알택시 기사는 천국에 보내십니까?”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가 살아있을 때, 준비도 안 된 네 강론을 들으려고 하다가 많은 사람들이 졸았지만, 총알택시 기사가 운전을 할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내게 기도를 하고 있었다.”
예수님이 선발하신 열두 제자를 돌멩이에 비유하면, 모난 것, 뾰쪽한 것, 깨진 것, 둥글넓적한 것, 큰 것, 작은 것 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은 돌멩이 열두 개를 주춧돌로 삼아 교회를 세우셨다. 물론 그중 하나는 빠져나와 예수님의 이마를 치기도 했다. 하지만 비록 못생기고 모난 돌이라 해도 다 쓸모가 있고 제 자리가 있다. 크고 반듯한 돌이라도 집 짓는 사람이 쓰지 않으면, 진흙 속에 파묻힐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참된 제자는 무엇을 가졌는가, 무엇을 가지지 않았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그 안에 계시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결정된다. 크고 화려하고 거창한 능력이나 힘, 기술이나 재능을 가지는 것보다 더 고귀한 것은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다. 온전히 예수님께 의지할 수 있는 믿음, 예수님을 내세우고 자랑할 수 있는 믿음이 더 고귀한 것이다. 그런 믿음을 가졌었던 사도들을 본받았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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