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7일 목 [녹] 연중 제 31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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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4-11-07 조회수42 |
복음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1-10 그때에 1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8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9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미사강론 (2024.11.07.목 / [녹]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오늘 복음의 비유는 죄인을 끝까지 찾으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회개한 죄인 하나에 대해 즐거워하시는 ‘하느님의 기쁨’에 대한 말씀이다. 비유 속에서 목자는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다닌다. 여인 역시 ‘잃은 은전 한 닢’을 ‘찾아낼 때까지’ 샅샅이 뒤진다. 이는 잃은 것을 찾으시는 구원의 주체가 하느님이시며 또한 ‘먼저’ 찾으시고, ‘끝까지’ 찾으시는 ‘믿음직스러운’ 하느님의 사랑을 말해준다. 그리고 잃은 것을 되찾은 후에,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라고 말씀하심은 이 비유의 정점이 잃은 것을 되찾는 것에 머물지 않고 되찾은 후에 ‘이웃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것’에 있음을 말해준다. 사실 이 ‘기쁨’은 너무도 커서 도저히 나누지 않고는 못 배기는 기쁨이다. 왜냐하면 양 한 마리를 잃어버린 아픔이 마치 백 마리의 양을 모두 잃어버린 것처럼 아팠고, 은전 한 닢을 잃어버린 슬픔이 마치 열 닢을 전부 잃어버린 것처럼 슬펐기에, 양 한 마리를 되찾은 기쁨은 마치 백 마리의 양 전부를 되찾은 것처럼 기뻤고, 은전 한 닢을 되찾은 기쁨이 마치 열 닢 전부를 되찾은 것처럼 기뻤기 때문이다. 그것은 양들을 맡기신 아버지께 대한 ‘충실함’이요, 비록 보잘것없는 죄인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치 전부인 양 소중히 여기시는 하느님의 지극하신 사랑이다. ‘하나 안에서 전부인 사랑’, ‘전부 안에서 하나인 사랑’, 바로 이 사랑이 십자가에 매달린 한 마리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전 인류를 구원하신 사랑이다. 바로 이 크신 사랑을 만나면 그 누구도 기쁘지 않을 수가 없고, 나누지 않을 수가 없고, 회개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그러니 ‘회개’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만남의 결과이며, 하느님 사랑의 결과이다. 그리고 그 ‘기쁨’은 하느님과의 만남의 기쁨이요, 재회의 기쁨이요, 나를 찾아오신 하느님의 크나큰 사랑에 대한 기쁨이다. 바로 이 기쁨이야말로 “아무도 빼앗아 가지 못할 기쁨”(요한 16, 22)이다. 오늘 비유는 “저 사람은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하고 투덜거리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따라서 이 비유 말씀은 “사람의 아들은 잃은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루카 9, 10)라는 당신 자신의 소명과 행위를 옹호하는 말씀이다. 더욱이 예수님은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루카 5, 32)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오늘 비유에서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 있다. 한 마리 양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쉽게 포기하는 목자는 다른 아흔아홉 마리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쉽게 포기할 것이다. 백 마리는 한 마리, 한 마리가 모여서 백 마리가 된 것인데, 한 마리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목자는 다른 아흔아홉도 소중히 여기지 않고 한 마리, 한 마리를 차례로 잃어버리게 될 것이고 찾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공동체는 잃는 공동체인가, 아니면 찾는 공동체인가? 한 마리를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인가, 아니면 한 마리쯤은 잃고도 찾지 않고 내팽개치는 공동체인가? 이것을 깊이 성찰하는 오늘이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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