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그날에 사람의 아들이 나타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7,26-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6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28 또한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29 롯이 소돔을 떠난 그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30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

31 그날 옥상에 있는 이는 세간이 집 안에 있더라도 그것을 꺼내러 내려가지 말고,

마찬가지로 들에 있는 이도 뒤로 돌아서지 마라.

32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

33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3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6)·37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어디에서 말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미사강론 (2024.11.15.금 / [녹]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노아의 방주나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는 죄에 따른 심판으로 재앙을 묘사한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생각과 악한 행동만을 일삼았고, 이에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창조물을 없애 버리시기로 하신다. 소돔과 고모라도 마찬가지다. 하느님께서는 노아 때에는 물로, 소돔과 고모라는 불로 그들의 죄를 심판하셨다. 이 두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하느님께서는 심판을 위하여 재앙을 내리시지만, 노아와 롯을 구원하신다는 점이다. 즉 재앙 가운데서도 의로운 이들은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오늘 복음은 심판을 이야기하면서 재림을 준비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알려준다. 그런데 노아와 롯의 시대에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노아 때에 대해서,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라며 그저 평범하게 살아갔음을 말하고 있을 뿐, 특별한 죄나 부패를 언급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은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사랑에 소극적이었을 뿐이다. 그러니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의 죄가 아니라, 그들이 장차 일어날 일에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오직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는 일에만

몰두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가 그들처럼, 비록 죄를 짓지 않더라도 세속의 삶에 빠져 주님을 알려하지도, 하느님을 경외하지도, 하느님의 의로움을 구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을 향해 자신을 내놓는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멸망을 당하리라는 말씀이다.

  한편, 롯의 때에는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불과 유황으로 멸망하였다. 롯도 노아와 마찬가지로 장차 닥쳐올 재앙을 미리 알고서 소돔을 떠나는 조처를 취하고 구원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집안에 있는 세간 곧 소유물에 대한 애착으로 뒤돌아보았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우리 삶의 끝과 세상의 종말에 적용되지만, 매일 현재의 모든 순간에도 적용된다. 우리가 매일 유혹을 받는 현세의 방종보다 하늘의 실재를 선택하는, 즉 목숨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계속한다면 우리는 매일 삶의 모든 순간에 구원의 은총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 두 이야기는 ‘사람의 아들의 날’을 미리 준비하라는 말씀이다. 곧 먹고 마심과 자신의 소유와 목숨의 보존에 매이지 말고, 그때를 준비하라는 말씀이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의 삶이 어디를 향하고, 누구를 향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예수님께서는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라고 하셨다. 제자들은 ‘어디’에서 심판이 벌어질지 예수님께 여쭙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분명하다. 죄와 악이 가득한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하느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사람들의 모습을 반복하여 묘사하는 오늘 말씀은 일상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에서 죄와 악을 피하고 선과 정의를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씀이다.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는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너는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도록 그런 삶을 살아라.”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어떤 시간인가? 즐겨야 할 시간인가, 아니면 준비해야 할 시간인가? 자신의 삶의 자리와 일상이 하느님 나라가 현존하는 때와 장소가 되도록 복음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모습을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