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 목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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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4-11-21 조회수162 |
복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46-50 그때에 4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47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48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49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미사강론 (2024.11.21.목 /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율법에 따르면 유다인 부모들은 아이를 낳으면, 사내아이는 40일 만에, 여자아이는 80일 만에 성전에 가서 제물을 바치며 산모의 정결례를 해야 했다. 또 당시 유다인들의 관습에 따르면, 남자건 여자건, 평생 혹은 일정 기간 동안 성전에서 살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며 하느님께 봉사하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남녀가 동석하는 일은 허락되지 않았고, 봉사의 종류에도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면, 여자는 성전내의 장식품, 사제의 복장을 만들거나 수선하는 일을, 남자는 성전에서의 예식을 준비하는 일을 하였다. 또 성서 공부, 시편 낭송 및 묵상 등은 남녀 모두가 받았다. 이러한 사람들을 “나지르인”이라 불렀는데, 연령 차이도 컸고 갓난아기도 있었다. 이 경우는 대부분 부모가 아이를 주시면 하느님께 봉헌하겠다고 한 약속에 따른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구약성경에 나오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경우라도 평생 성전에 머무르며 동정을 지키는 것은 아니었다. 나이가 차면 본인의 의사에 따라 자유로이 배우자를 얻을 수 있었다. 또 이런 봉헌은 율법에 따른 의무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신심 깊은 부모들은 대부분 자녀들을 성전에 바쳐서 자녀들의 종교심 함양을 도모하였다. 2세기에 쓰인 외경(外經)인 《야고보의 원복음서》에 보면, 부모와 함께 성전에 간 마리아는 비록 3살이란 어린 나이였지만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고 자발적으로 자신을 주님께 봉헌하였다고 한다. 마리아가 성전으로 올라갈 때, 계단에는 성모님의 발자국마다 장미가 피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 축일 이름이 자헌(自獻), 스스로 자신을 봉헌한 날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모님께서 몇 살 때까지 성전에 머물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가브리엘 대천사가 나타났을 때는 이미 나자렛의 본가에 계셨으며, 15~16세의 몸으로 요셉과 약혼한 상황이었다. 그 이후의 성모님 생애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아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사실 성모님의 삶을 떠올려 보면 그렇게 부러워 보이는 삶은 아니다. 결혼도 하기 전에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해서 파혼의 위기를 맞이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예수님은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말하였기 때문에’(마르 3, 30) 일부러 오늘 복음처럼 공생활 중인 예수님을 찾아갔더니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또 어떤 이들은 그분의 “어머님과 형제들”이라는 표현 때문에 혼란스러워한다. 성모님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에 의구심을 갖기도 하고 다양한 해석을 제시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언뜻 보기에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내치신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당시에 ‘형제’라는 표현이 지금보다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고, 사촌들에게도 적용되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이 강조하는 것은 새로운 관계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우리는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을 형제자매로 생각하여, ‘교형자매’(敎兄姊妹)라는 말을, 남자에게는 ‘형제님’, 여자에게는‘자매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죄인으로 비난받던 이들과 함께 어울리시고 그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이것 때문에 종교 지도자들과 마찰이 생기기도 하였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과 과부들도 돌보시고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공동체에서 소외된 이들, 특히 나병 환자들을 공동체 안으로 돌려보내셨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기존의 관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가신다. 제자들과 예수님의 관계도 이런 새로운 관계 가운데 하나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새로운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바로 신앙인이 가지는 새로운 정체성이다. 성모님의 봉헌을 기리며, 침묵과 순종 안에 구원의 말씀을 품고 살아가며 실천으로 열매 맺는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어머니고 형제이다. 그래서 복음 환호송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은 행복하여라.”하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하시고자 우리에게로 마중나오시고 성체로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주님과 하나되어 살아갔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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