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5일 목 [자] 대림 제1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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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4-12-05 조회수49 |
복음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21.24-2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1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24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25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26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27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미사강론 (2024.12.5.목 / [자] 대림 제 1주간 목요일) 어떤 할아버지가 젊은 검사에게 “쯧쯧, 이걸 어떻게 해. 자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앞으로 3주 후면 죽을 팔자야.” 그리고 계속 말하였다. “그런데 아직 희망은 있구먼, 자네 오늘 집에 가자마자 공책에다가 ‘죽을 사’(死)를 3만 번 쓰도록 하게. 그러면 죽는 것을 피할 수 있을 거야.” 태어나면서부터 똑똑하다는 소리만 계속 들으면서 자란 그 검사는 자신이 3주 후에 죽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했을까요? 그렇다고 그 해결책으로 엄청난 액수의 복채를 내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힘으로도 할 수 있는 ‘죽을 사’자를 적기만 하면 되는데, 과연 그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하였을까? 젊은 검사는 집에 가자마자 공책에다가 ‘죽을 사’자를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틀 밤을 꼬박 새워서 ‘죽을 사’자 3만 번을 다 적었다. 말이 삼만 번이지, 똑같은 글자를 삼만 번 쓴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했겠는가?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그 지겨운 작업을 모두 해냈다. 왜냐하면 이것을 쓰지 않으면 정말 3주밖에 살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주가 가까워지자 이 젊은 검사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혹시 자신이 3만 번을 잘못 세어서 조금 부족하게 쓴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그 3만 개의 ‘죽을 사’자를 몇 번이나 다시 세어보았는지 모른다. 드디어 할아버지가 말하였던 3주가 되었다. 하지만 ‘죽을 사’자를 열심히 적어서 그런지 그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만일 그 젊은 검사에게 할아버지가 복채를 내라고 했다면 분명히 미신이라고 여기고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자신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었기에 최선을 다해서 어리석어 보이는 행동도 서슴지 않고 했었던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행동하는 믿음, 실천하는 믿음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신다. 그래서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라고 말씀하셨다. 실상 아무리 큰 믿음, 산을 옮길만한 신앙, 원대한 꿈을 지녔다 할지라도, 그 믿음, 그 꿈이 현재 삶 안에서 보여지지 않는다면 별 의미가 없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너무나 많은 말들이 넘쳐흐르고 있다. 오늘도 수많은 강연대 위에서 펼쳐지는 강론들, 설교들, 귀가 솔깃한 공약들, 당장이라도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 같은 꿀 같은 약속들이 행해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실제 삶 안에서 현실화되지 않는다면 쓸모가 없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에 정말 필요한 것은 결실이 뒤따르는 행동,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이다. 그래서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우리는 이 세상에서 위대한 일을 할 수는 없다. 단지 위대한 사랑을 갖고 작은 일들을 할 수 있을 뿐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수녀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크고 위대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그보다는 작은 일들의 실천에서 우리 인생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 듯 싶다. 사실 사람들은 위대한 일을 하겠다고 거창한 계획을 세우곤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겠다고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사소하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살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하신다. 그리고 그것은 앞선 할아버지의 말처럼 그렇게 고생스러운 것도 아니다. 오히려 행하면 행할수록 커다란 기쁨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랑’이라는 것이 너무나 흔한 것이라 그럴까? 또 이 안에 물질적인 것이 들어있지 않아서 그럴까? 우리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계속해서 무시하면서, 자신의 뜻만을 실천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앞선 그 젊은 검사는 살기 위해서 나름대로 들은 최선의 행동을 했다. 우리 역시 살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 하느님의 뜻인 사랑을 실천하는 길밖에 없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야 하늘나라에 들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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