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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강론

2024년 12월 17일 화 [자] 12월 17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4-12-18 조회수47

복음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의 시작입니다.1,1-17

1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2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3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4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6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8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9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10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11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12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13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14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15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7 그리하여 이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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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강론 (2024.12.17./ [] 1217)

 

   족보를 보며 나이에 상관없이 아저씨뻘이니 형님뻘이니 하며 촌수를 따져본 적이 있는가? 그러면서 아주 먼 친척이라도 높은 직책에 올랐다며 가문의 영광이라면서 호들갑을 떨고, 먼 친척임에도 아주 가까운 것처럼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게도 한때는 춘향전의 변 사또와 어떤 관계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 때로 시인 변영로(榮魯, 1898-1961) 선생님과 어떤 관계냐고 묻는 분도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저와는 본()이 달라 상관이 없다.

  그러나 집안에 아무리 훌륭하고 유명한 삶을 산 분이 있다 해도 내가 잘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분의 인생과 나의 인생은 분명 다르다. 누가 나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다. 그렇다면 가문을 자랑하기보다 내가 좋은 가문을 만들어야 한다.

 

   훌륭한 가문이라는 우리나라의 족보를 보면 여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요즘에는 딸들의 이름도 기록된다고 하지만, 예전에는 출가외인이라는 생각에 기록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복음으로 들려주는 예수님의 족보에는 여인이 등장한다. 그것도 훌륭한 사람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사람임에도 부끄럼 없이 올라 있다. 시아버지와 동침하여 자식을 낳은 타마르, 창녀로써 적군인 이스라엘 백성과 내통한 라합, 그리고 젊은 과부로 보아즈를 유혹했던 이방인인 룻, 자기 남편을 죽인 다윗의 자식을 낳은 우리야의 아내 바쎄바이다. 이렇게 감추고 싶은 죄인들이 등장함은 의미가 크다.

   메시아의 가계가 끊어지지 않도록 기묘한 방법으로 대를 이어가셨다고 할 수 있고, 또한 의인과 죄인의 장벽이 무너졌다고 할 수도 있다. 룻을 등장시킴으로써 유다인만의 메시아가 아니라 이방인의 메시아도 된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은 분명하다. 결국 하느님은 모든 이에게 구원을 주시려 인간 역사 안에 들어오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우리를 위한 당신의 구원 의지를 보여주신다.

 

   이제 계속 이어지는 족보의 끝에 우리의 이름도 기록될 것이다. 기왕이면 내로라하는 인물이 아니더라도 죄인으로 기록되지 않아야 하겠다. 또 그분의 족보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기에 앞서 그분 마음에 드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은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루카 10, 20)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누구를 등에 업고 있으려고 하지 말고 하느님의 뜻에 걸맞은 삶이 무엇인가를 자신에게 일깨우며 실천하는 오늘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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