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7일 금 [백]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 |
---|---|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4-12-28 조회수34 |
복음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0,2-8 주간 첫날, 마리아 막달레나는 2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2024. 12. 27 ; 답십리 본당) 성탄 다음 날인 어제는 첫 번째 순교자인 스테파노를 기념하였고, 그 다음 날인 오늘은 사도 요한의 축일을 지내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바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분을 먼저 기념하고, 그 다음으로 예수님이 사랑이심을 평생 증거한 사도 요한을 기리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 신앙인들은, 우리가 믿는 신앙을 목숨을 바쳐서 증거하거나, 사랑 실천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알려준다. 예수님의 직제자들, 곧 12사도들은 모두 십자가형에 처해진 스승님의 모범을 따라 너나 할 것 없이 앞다투어 순교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유독 요한 사도만은 자연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비록 자연사했다 할지라도, 순교자 못지않은 제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물론 그에게도 어김없이 순교의 기회가 찾아왔었다. 서기 95년 제2의 네로 황제라 불릴 정도로 악명이 높았던 도미티아누스 황제(81-96)의 박해 때, 사도 요한은 에페소에서 로마로 소환된다. 그리스도교를 버리라는 압박을 받았지만, 그가 응할 리 만무했다. 사도 요한이 일언지하에 거절하자 집행인은 그를 라틴 문(Porta Latina)이라는 장소로 끌고 가서 부글부글 끓는 초대형 기름 가마솥에 던져넣었다. 그러나 그 옛날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 왕에 의해 활활 타오르는 불가마 속에 던져졌지만, 조금도 화상을 입지 않고 하느님을 찬양하였던 다니엘의 세 동료들처럼(다니 3, 19-97) 티끌만큼의 상처도 입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관리들은 사도 요한을 소아시아 해안에 있는 파트모스 섬으로 유배를 보냈다. 이렇게 그는 순교의 영예를 입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다 갖췄고, 순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하느님의 뜻은 다른 데 있었다. 그는 박해 앞에서도 죽지 않고 백 살 될 무렵, 달릴 곳을 다 달린 후 잠자듯이 편안하게 이 세상을 떠났다. 그런 사도 요한은 예수님으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은 제자로 유명하다.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을 소생시키셨을 때나 타볼 산 위의 거룩한 변모 때에도 그는 베드로, 야고보와 함께 그 자리에 있었다. 최후 만찬 석상에서도 예수님 바로 옆에 딱 붙어 앉아 떠날 줄을 몰랐다. 다른 제자들로부터 질투와 시기를 받을 정도였다. 그는 스스로를 ‘예수님께로부터 사랑받던 제자’라고 표현했다. 예수님의 수난이 시작될 때 수제자 베드로 사도는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며 배반했다. 다른 사도들 역시 다들 슬금슬금 뒤꽁무니를 빼다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유일하게 남은 사람이 요한 사도였다. 그는 목숨의 위협을 무릅쓰고 골고타 언덕 십자가 아래를 끝까지 지켰다. 이 같은 요한의 충성을 예수님께서 눈여겨보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의 미래를 그에게 맡겼다. 요한은 기쁜 마음으로 성모님을 자신의 집에 모시고 지극한 효성으로 보살펴드렸다. 서기 96년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암살되자 황제가 된 네르바(96-98)는 추방된 그리스도인들을 복권시켰는데, 사도 요한도 에페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곳에서 고령이었지만 유일하게 생존한 사도로서 최선을 다해 교회를 지도했다. 너무나 노쇠해진 사도 요한이었기에 홀로 걸을 수조차 없었지만,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강론대에 섰고, “아들들아, 서로 사랑하여라!”라는 말만 거듭 반복했다. 그가 언제든 한결같이 사랑하라는 같은 말만 반복하자, 신자들이 궁시렁궁시렁 불평불만을 터트릴 정도였다. 이렇게 말년에 다다른 요한의 입에는 오로지 사랑이란 단어만 흘러나왔으니, ‘사랑의 사도’라 불릴 만했다. 그에게 있어 사랑은 교회의 기초였으며, 그는 사랑만 있으면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을 백번 천번 더 강조했다. 그렇다면 나의 사랑은 어떨까? 나는 과연 얼마나 예수님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혹시 입으로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실제로는 이기적인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말과 글로 선포하였다면, 순교자들은 자신들의 목숨으로 하였고, 교회 학자들은 성령께서 주신 지혜로 하느님의 뜻을 해석하였다. 그러니 우리도 제각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예수님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야 하지 않을까? 주님의 사랑을 받는 만큼, 주님을 사랑하는 만큼 우리의 마음도 커졌으면 좋겠다. ‘기쁨을 나누면 배가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라는 옛말이 ‘기쁨을 나누면 시기,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된다.’라고 바뀌었다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마음! 그런 마음을 키워 모두를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파일첨부 |
이전글 | 2024년 12월 28일 토 [홍]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
---|---|
다음글 | 2024년 12월 26일 목 [홍]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