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20일 월 [녹] 연중 제2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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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5-01-21 조회수26 |
복음 <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8-22 그때에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연중 제2주간 월요일 (2025. 1. 20 ; 답십리 본당) 오늘 복음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단식에 관한 문제로 시비를 건 이야기이다. 단식(斷食, fasting)은 거의 모든 종교에서 행하는 기본 덕목으로 일정 기간동안 수행(修行)의 이유로 음식 섭취를 끊는 일이다. 도교에서 단식은 장생불사(長生不死)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요즘 단식은 자신이나 단체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수단으로, 건강이나 날씬한 몸매를 갖거나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율법에서 단식은, 제7월(현대력으로 9월)의 10일에 거행하는 욤 키퍼(Yom Kipper) 때 행해졌다. 이스라엘의 모든 축제 중 가장 엄숙한 날인 욤 키퍼는 “죄 벗는 날”(레위 16, 29)이다. 현재도 지켜지는 이 날, 모든 유다인은 한 해 동안 지은 죄를 참회하고 단식하며 안식일 중의 안식일로 여기고 일을 하지 않는다. 이외에는 개인적인 의미의 단식이었다. 즉 바빌론 유배 이후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는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는 뜻으로 일주일에 두 번(월요일과 목요일) 단식을 하였다. 또 세례자 요한은 금욕 생활을 하였고, 그의 제자들도 스승을 본받아 자주 단식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루카 18, 12 ; 마르 1, 6 ; 마태 11, 19). 그렇기에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는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라며 ‘왜 단식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예수님은 자신을 혼인 잔치에서의 신랑, 새 천 조각, 그리고 새 부대에 비유하셨다. 실상 혼인 잔치가 벌어지는 동안 신랑이 손님들과 단식을 하거나 곡(哭)을 하지는 않으며, 술과 음식, 여흥과 춤, 기쁨과 웃음이 넘쳐난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공생활을, 혼인 잔치가 벌어지는 기간으로 제시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함께 해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동안은 구원과 축제의 시간이기에 단식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안 계시다면, 다시 말해 신랑이 떠나는, 즉 성경의 언급처럼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오면” 단식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 우리 신앙인들이 단식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매일 단식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구원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는 과정 중에 있기 때문이다. 즉 축제와 단식이 함께 있는 과정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인 복음을 듣는 자세를 제시하셨다. 그것이 바로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 것이고,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고,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는 것”이다. 새 천 조각이란 복음이고, 헌 옷은 자신의 고정관념, 자기 삶의 틀, 선입관 등이다. 결국 예수님은 복음을 들었으면 자신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말라는 것이다. 오히려 복음의 말씀대로 바뀌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로 복음으로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복음이 이러저러하니 자신에게 그렇게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복음을 읽고 그 말을 마음에 둘 정도라면, 그 깨달음에 따라서 자신의 생활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나날이 새롭게, 복음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말만 하고 실제 생활이 변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위해 복음을 이용하는 것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는 것”이다. 이제는 그런 모습과 마음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새로운 모습과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변화되지 않는 믿음은 자신만을 위한 허울일 뿐이다. 그런 믿음은 다른 이에게 아픔과 고통을 줄 뿐이다. 모두에게 힘이 되고 위안을 주고 기쁨을 줄 수 있는 믿음을 만들어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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