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0일 목 [녹] 연중 제6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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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5-02-20 조회수58 |
복음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27-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29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두어라. 30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31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32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33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34 너희가 도로 받을 가망이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서로 꾸어 준다. 35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연중 제6주간 목요일 (2025. 2. 20 ; 답십리 본당) 오늘 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하여 가시면서 동행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셨다. 그런데 이 지역은 헤로데 임금과 클레오파트라 왕비 사이에 태어난 헤로데 필리피가 다스렸던 곳으로, 로마 제국의 첫 번째 황제인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를 기려서 세운 도시였다. 그런 탓에 이교도 신앙의 중심지였고, 구약 시대에는 ‘바알’ 신의 예배 중심지였다. 한마디로 이 지역은 이교도의 유산과 문화를 집대성해 놓은 도시였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이방인의 도시에서 제자들에게 당신이 누군지를 물어보신 것은 당신의 정체에 대한 물음이라기보다는, 제자들 자신의 정체에 대한 질문이었다. 결국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이 질문은 ‘네 인생에서 나는 무엇이냐?, 네 인생에서 나란 존재는 어떤 의미를 지니느냐?’라는 것이다. 이에 베드로 사도가 재빨리 나서서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간단하지만 이 대답은 “스승님은 저와 인류 전체를 구원하실 메시아이십니다. 또 제 임금, 제 주님, 제 인생의 전부, 제 인생의 의미, 제 하느님이십니다.”라는 것이다. 그렇게 대답한 베드로였지만, 그는 예수님께서 자신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실 것”이라 하자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라고 복음은 전해준다. 물론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충성스러운 마음이 누구보다 강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자신이 기대했던 세속적인 희망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느낌과, 자신이 깊이 사랑했던 스승의 끔찍한 죽음이 크게 안타까워서 예수님을 꼭 붙들고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외쳤던 것이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라고 질책하셨다. 결국 베드로의 본심은 예수님보다도 자신에게 마음이 더 쏠려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스승님의 영광을 누리고 싶지, 수모와 배척을 당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걸 보면 사람은 분명 ‘이중성’(二重性)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고백하면서도 희생과 고통은 철저하게 외면할 때, 봉사할 때도 남들 눈에 띄는 일은 좋아하면서도 숨어서 하는 희생은 하지 않는 이중성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신앙생활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지, 예수님을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허상의 예수님을 만들어 놓고 내 편리대로, 내가 원할 때 꺼내 쓰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늘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이 질문에 어떠한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개인 삶은 물론 세상의 모습도 달라진다. 그러니 이 질문에 대답하려고 하지 않으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함은 내 뜻이나 내 신념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고백하는 것이다. 그렇게 예수님을 따름으로써 제자인 우리 모두 예수님과 늘 동행하였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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