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3일 목 [자]사순 제1주일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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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5-03-13 조회수48 |
복음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을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7-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8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9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을 청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0 생선을 청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12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사순 제1주간 목요일 (2025. 3. 13 ; 답십리 본당) 평소에도 사이가 좋지 않아 곧잘 다투던 철학과의 두 학생이 바람이 많이 불던 날, 누가 철학과 아니랄까봐 철학적인 논쟁이 벌어졌다. 두 사람은 은행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은행나무의 가지가 흔들리자 한 학생이 “바람이 세차게 부니까 나뭇가지가 움직이는구나.”라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친구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바람이 움직이는 거야.”라며 반박하였다. 이에 “무슨 소리! 그건 바람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거야, 이 바보야.”라며 양보 없이 서로가 옳다고 우겨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던 다른 친구들까지도 그 논쟁에 가세하였다. 여러분들은 누구의 의견이 맞는 것 같은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것일까? 아니면 바람이 움직이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한 말다툼으로 언성이 점점 높아지자 지나가던 교수님께서 자초지종을 물었고, 두 학생은 서로가 옳다면서 시비를 가려달라고 부탁했다. 교수님께서는 “나뭇가지가 움직이건 바람이 움직이건 그건 살아가는데 별 중요한 일이 아니야. 삶에 있어 중요시 여겨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 자네들처럼 자신만 옳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마음의 움직임이야. 그 바람이 너무 세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십상이지. 중요한 것은 언제나 자신들의 마음이 어느 방향으로 부는가 헤아려 보는 일이지.” 그 교수님의 말씀처럼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는 생각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나라인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어울려 살기보다는 자기의 뜻만을 주장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예수님께서는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라고 하신 것이다. 사실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고, 상대방의 뜻대로 행동해주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이며,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그런데 많은 신앙인이 기도를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는 도깨비 방망이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도깨비 방망이를 내리치듯이 하느님도 내가 원하는 것을 청하기만 하면 다 들어주시는 분으로 믿는다. 이런 이들에게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라는 말씀은 도깨비 방망이 같은 기도에 대해 확신을 가지라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로 청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적극적인 행위 또한 요구하신다. 그 행위란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라는 말씀에서도 나타나듯이 이웃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야고 3, 17) 것이다. 기도와 실천, 이 둘은 결코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 생활에만 전념한다고 실천을 소홀히 하거나, 실천을 핑계로 기도를 소홀히 한다면 완전한 신앙에 도달할 수 없다. 평소에 기도하지 않던 신자들도 간절한 바람이 생기거나 어려움이 닥치면 기도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기다리다가 금방 응답이 없으면 이내 실망하고 만다. 이런 사람들은 설령 기도의 응답으로 좋은 결과를 얻었다 하더라도, 마치 사탕을 받아 든 아이와 같은 신앙 태도를 보인다. 참으로 성숙한 기도는,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라는 오늘 복음 말씀을 ‘주님께서 너희에게 해 주시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가 주님께 해 드려라.’고 바꾸면 된다. 참된 기도는 이렇게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바라시는지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다. 그것이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태 22, 37)라는 첫째가는 계명을 실천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이 사랑이다. 이런 기도부터 하려고 해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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