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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14일 금 [자]사순 제1주일 금요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5-03-14 조회수48

복음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20-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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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1주간 금요일

(2025. 3. 14 ; 답십리 본당)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시어 가르치시는 산상설교(山上說敎)의 한 부분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가르침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될 자격 조건과 지침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 이전까지 유다인들이 알고 있던 하느님의 백성이 되는 자격 조건은 일단 혈통적으로 온전히 유다인이어야 하고, 율법과 예언서의 말씀을 글자 그대로 따르는 일이었다. 또 율법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었다. 하나는 하느님께서 손수 돌판에 새겨준(탈출 31, 18) 십계명이고, 다른 하나는 십계명과 관련되거나 비롯된 수많은 규정들과 법령들이다. 후자(後者)에는 하느님께서 직접 모세를 통하여 주신 것도 있지만, 조상들에 의해 만들어진 규정과 전통들도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보다 더 옳게살아야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고 그 나라의 백성이 될 자격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도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인정하신 것이다. 사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열심히 산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의로움은 그들만의 생각, 즉 율법 규정의 글자에만 얽매인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에 의해 새로이 요구되는 의로움은 하느님의 뜻에 기준을 둔 것이다. 또 그 율법이 만들어진 이유와 그 뜻을 올바로 알고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활해야 그들의 의로움을 능가할 수 있을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율법에 의하면 살인이 재판, 즉 사형(死刑)에 해당되지만, 형제에게 을 내는 것만으로도 살인과 같은 재판, 즉 사형(死刑)을 받아야 한다고 하신다. 더 나아가 바보!’라는 욕을 하면 최고 의회에 넘겨지며, ‘멍청이라는 폭언을 하면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라고 하셨다. 더군다나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 그러면 누가 저의 형제입니까? 저를 괴롭히고 경제적으로 힘들게 만들고, 저에게만 모든 책임을 다 지우고, 자기 혼자서만 행복하겠다는 제 형제가 정말 저의 형제입니까?’하고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픔만 주는 사람을 계속 형제로 여기고 받아들여야 합니까?’라는 말도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오늘 복음 말씀은 나에게 원망을 품게 만든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으며, 누구의 마음에 못을 박아 아프게 하였는가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런 탓에 오늘 복음은 실질적으로 참회를 하고, 실질적으로 용서를 청하고,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이웃들과의 관계 안에서 실질적인 사랑을 나누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오늘 독서는 아무리 못된 잘못을 한 사람이라도 하느님께서는 그가 죽기보다는 회개하여 다시 새로운 삶을 살기를 더 원하신다고 알려주고 있다. 사실 우리가 용서하지 못할, 용서 청하지 못할 잘못도 없다. 그러니 서로 용서를 청하고 용서를 해 주어야 한다.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시는데 우리 인간이 무엇이라고 같은 사람을 용서해 주지 못한다는 말인가? 행여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하느님보다 더 위에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하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양심이 무디어져서 자신이 이웃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은 것 같다. 오늘 복음을 깊이 묵상하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의 마음을 바르게 지닐 수 있도록 도와주십사고 청하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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