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9일 연중 제17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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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4-07-29 조회수58 |
복음 <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마르타는 라자로의 동생이자 마리아의 언니로서 이들은 예루살렘과 가까운 베타니아에 살았다. 나흘이나 무덤에 묻혀 있던 라자로는 예수님의 기적으로 다시 살아난 인물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집에 머무르실 때 언니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으나, 동생 마리아는 가만히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들었다. 이에 마르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루카 10, 40)하고 말하자, 예수님은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루카 10, 41-42)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마르타는 활동적인 신앙인의 모범으로, 마리아는 관상 생활의 모범으로 공경받고 있다. 프랑스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라자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승천하신 후 여동생인 마르타와 마리아, 그리고 막시모(Maximus), 다른 동료들과 함께 박해를 피해 유다 땅을 떠나 노 없는 배를 타고 표류하다가 프랑스 남서부 프로방스(Provence) 지방에 도착했다. 그들은 그 지방에서 열정적으로 복음을 선포해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고, 라자로는 마르세유(Marseilles)의 초대 주교로 활동하다가 그곳에서 선종했다고 한다. 또 마리아는 마르세유(Marseilles)에서 복음을 전한 후 그곳 산의 한 동굴에서 30년 동안 은수자로 살다가 선종했다고 한다. 그녀는 어두운 동굴에서 떨어지는 물만으로 연명했다고 한다. 그녀가 매일 일곱 번 기도할 때마다 천사들이 그를 하늘로 들어 올려 그의 귀는 천사들의 찬송을 들었다고 전해진다. 마르타는 네를뤽(Nerluc) 마을 사람들이 괴물에게 시달리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 괴물을 굴복시키기로 마음먹었다. ‘타라스크’(Tarasque)라는 이름의 이 괴물은 사자 머리에 다리가 여섯 개인데 곰 다리처럼 무척 두꺼웠다. 또 소의 몸통에 등은 단단한 거북껍질로 덮여 있었으며, 꼬리에는 비늘과 껍데기가 가득하고 그 끝에는 전갈 침이 달려 있었다. 네를뤽 왕은 타라스크를 물리치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하였다. 이에 마르타는 손에 십자가를 든 채 괴물의 몸에 성수를 뿌렸다. 그리고 기도와 찬송으로 타라스크를 감화시켜 얌전하게 만들었다. 그런 다음 타라스크의 목을 자신의 허리띠로 묶어 성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괴물이 모습을 드러내자 성안에는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그간 괴물에 대한 공포와 증오심에 사로잡혔던 사람들이 이성을 상실하고 일제히 몰려와 그 자리에서 괴물을 죽였다. 하지만 괴물은 사람들의 공격에도 전혀 반항하지 않았다. 그 뒤 성녀 마르타는 마을 사람들에게 선교 활동을 벌여 그리스도를 믿도록 했고 이에 사람들은 마을 이름을 타라스콩(Tarascon)으로 바꾸었다. 마르타의 유해는 그곳에 안치되었다. 오늘 복음에서 마르타는 라자로의 죽음에 대해 예수님께 탓을 돌리는 듯하다. 왜냐하면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에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이 마르타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아마도 오빠가 죽는다하여도 걱정할 필요가 없도록 위로를 주었을 것이다. 믿음은 이렇게 우리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걱정, 근심, 두려움, 불안이 사라지고 감사와 기쁨과 평화가 찾아온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아직 예수님을 만난 게 아니다. 오늘 복음의 메시지는 예수님이 마지막 날에 죽은 자를 살려주시는 분이 아니라, 구원을 “지금 여기서” 베푸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구원은 바로 지금 내가 사는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구원이 단지, 내가 죽은 다음에, 하느님의 심판을 받아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구원은 이 세상에서부터 체험되고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지금 구원을 체험하지 못한다면, 죽은 다음에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구원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마르타는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함으로써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신앙고백의 표양을 보여 주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믿었습니다.’라는 고백이 아니라 ‘믿습니다.’라는 늘 현재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의 고백이 더 적극적으로 되어 삶으로 보여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였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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